유동길 < 숭실대 중기대학원장 >

세계각국은 밤낮 가릴것 없이 뛰고있다. 선진국은 유리한 조건을 최대로
활용해서 뛰는가하면 개발도상국은 나름대로 경제개발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지금 세계각국의 기업은 아시아최대의 잠재시장으로 일컬어지는
베트남에서 경제전쟁을 치르거나 치를 준비를 하고있다. 그래서 베트남행
비행기는 만원이다.

최근 30명의 중소기업경영자들과 5박6일간 베트남의 호치민시를 다녀왔다.
짧은 기간, 더욱이 주마간산격으로 보고온 베트남에 대해 이야기할 것은
없다. 단지 몇가지 받은 느낌을 적어볼 뿐이다.

탄손나트공항의 세관원들은 여행객을 밀수꾼이나 죄인 다루듯 손가락질
하거나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그런 태도에 당황하기도 했지만 과거
우리도 그랬었다는 기억을 떠올렸다.

나쁜 전력사정때문에 가로등이 거의 없는 어두운 밤의 시가지, 우리 일행
이 탄 버스가 멈출때면 예외없이 달려드는 잡상인들과 돈달라고 끈질기게
매달리며 조르는 걸인들, 이게 겉으로 보이는 베트남의 모습이다. 이런건
6.25를 겪은후 우리가 일찍이 경험한것 아니었던가.

그러나 호치민시의 거리는 모터싸이클과 자전거가 서울의 지하철역을
빠져나오는 사람의 물결보다 더큰 물결로 넘쳐흐르고 있다. 공원이나
길거리에서 데이트하는 젊은이들의 모습, 노래방과 나이트클럽은 서울과
다를바 없다. 이런점으로 오늘의 베트남을 평가할수는 물론 없는 일이다.

지금은 비록 가난하지만 베트남은 변화의 몸부림을 치고있는 모습이
역력하다. 투자관련 심사승인기관인 국가협력투자위원회(SCCI)를 방문
했을때 이기관의 차관은 베트남에의 투자를 열심히 권유했고, 한국총영사가
주선해서 영사관에서 열린 투자성명회에서는 호치민시주변의 여러성 책임자
10여명이 나와 2시간 이상에 걸쳐 각기 자기성의 투자환경과 투자추천
프로젝트를 팸플릿을 만들어와서 설명했다. 설명회가 끝난후 저녁식사까지
같이하며 더많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석유를 비롯한 풍부한 천연자원, 고난의 역사가 길러낸 강한 인내심과
뛰어난 손재간을 가진 양질의 저임노동력, 한쪽에선 모를 심고 또 한쪽에는
벼가 누렇게 익어있는 들판과 나무마다 달려있는 과일, 이런것은 베트남의
가능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90년현재 베트남의 1인당 국민소득은 230달러에 불과하지만 67년 우리가
142달러였을때 베트남은 170달러수준이었다. 불과 얼마전 우리는 어떤
수준에서 출발했던가.

우리는 지금 국제화.세계화를 부르짖고 아.태지역의 경제협력, 특히
동북아에서의 한국의 새로운 역할을 이야기한다. 국가간의 경제협력은
상회신뢰와 존중이 바탕에 깔리지 않고서는 좋은 결실을 맺을수 없다.
상호신뢰와 존중이란 무엇인가.

베트남방문에서 한국인2세들을 직접 만날수 있었던 것은 다행스럽기도
했고 한편 가슴아프기도 했다. 호치민시에는 한국인2세들에게 무료로
직업훈련을 시키는 휴먼직업기술학교(Human Job Training School)가 있다.
김영관목사가 90년부터 시작해서 한국어와 영어를 가르치는 어학반, 컴퓨터
전자 보석가공 모터싸이클과 자동차수리 미용 건축디자인등 분야의 기술을
가르치는 직업반에 363명의 학생이 1~2년과정의 교육을 받고있는 곳이다.

몇명만 앉아도 꽉찰것 같은 좁고 낡은 교실에서 낡은 실습기계와 시설을
붙들고 땀을 흘리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무어라 표현할길 없는 묘한
감정에 빠져들었다. 더욱이 시설이 낙후된 기숙사를 둘러보았을때 아이들이
먼저 "한국인2세"라고 서투른 한국말로 자기들을 소개했고 서투른 영어로
몇마디 질문에 답하기도 했다.

박아무개라는 아이는 아버지이름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고 아버지는 지금
미국에 살고 있다는 대답이었다. 아마 그 아이의 어머니는 거짓으로 아버지
가 미국에 살고 있다고 이야기하지 않았을까.

아이들에게 물어볼게 많았지만 그건 우리의 관심사일뿐 그들의 상처를
건드릴까봐 자제할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무언가를 기다리는, 그러면서도
어려움을 운명적으로 참고 있다는걸 눈망울에서 느낄수 있었다. 김영관목사
는 3년간 수소문해서 찾은 2세들이 모두 630명이었다면서 지금 이시점에서
아버지를 찾아주는 일보다 베트남에서 떳떳한 직업인으로 살아갈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학교교실과 기숙사를 둘러본 우리 일행모두는 착잡한 감정에 젖어 주머니
를 털어 성금을 전달하기도 했지만 그것으로 우리의 마음이 가벼울수는
없었다.

국제화나 대외진출이라는게 근시안적으로 경제적 이득을 위해 밖으로
나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역사적으로 꼬인 매듭을 풀어가고
상호신뢰와 존중의 바탕위에서 돕고 도움받는 협력을 해야하는 것이다.

투자대상국 베트남은 과거의 월남이 아니다. 더욱이 노다지시장도 아니다.
베트남의 정비돼있지 않은 법체제, 관료주의와 행정의 비능률, 열악한 사회
간접자본, 같이 일할 베트남사람을 제대로 파악하는 일등이 모든걸 함께
고려하는 베트남진출전략이 필요할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