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7년2월 김만철씨 일가 11명이 북한을 탈출, 김포공항에 도착했을
때의 도착일성을 우리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따뜻한 남쪽나라를 찾아
왔다"는 그의 첫마디는 그때가 마침 겨울철이었기에 더욱 인상적이었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지난달 30일 여만철씨 일가족 5명이 북한탈출에
성공, 김포공항에 도착해 토해낸 첫마디는 "배가 고파 탈출했다"는
것이었다. 탈출의 동기가 더욱 처절하고 절박해진 감을 주고 있다. 그만큼
북한주민들의 생활이 악화됐다는 뜻으로도 들린다.

김만철씨의 경우만 해도 일가족이 함께 탈출에 성공한 것은 처음이어서
"특별한 경우"려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린 감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여씨일가의 경우는 최근 북한주민들의 탈출이 보편화되고 있는 상황
에서의 일이라 큰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시베리아 벌목장을 탈출해
러시아땅에 숨어 사는 북한노동자가 2,000명에 가깝고 중국에도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탈출한 북한주민이 2,000명에 이른다는 소식은 벌써 구문이
되고있다.

89년 소련및 동구권붕괴당시 해외유학생들에서 시작된 북한주민들의 연쇄
탈출은 시베리아 벌목공으로 이어지고 다시 북한거주 주민들의 필사적
탈출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여씨일가의 탈출은 바로 그러한 북한판
엑서더스의 심각성을 말해주는 증거라고 하겠다. 얼어붙은 압록강을 일가족
이 걸어서 넘을 정도였다니 북한당국의 통제체제도 이제 한계점에 이르지
않았나 보여진다.

그동안 우리정부는 북한핵문제에 매달려 북한의 인권문제는 뒷전으로
밀어놓고 지낸 감이 없지 않다. 그러나 이제는 인권문제를 적극 거론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더이상 정치적 이유로 탈북난민대책수립에 소극적
이어서도 안된다. 북한인권문제의 국제여론화는 북한 당국을 궁지에 몰아
넣자는 것이 아니라 어려움을 풀어주는 국제적 해법을 강구해 보자는
선의에서 출발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민간차원에서도 최근 "탈출동포정착금지원모금 범국민운동"등을 통해
나타나고 있는 북한인권문제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여씨일가의 탈출을
계기로 더욱 확대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