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산기. 요즘 일간지에 연일 전면광고를 내는 눈에 익은 기업이다.

ABS(미끄러방지브레이크)를 대대적으로 팔았고 이어 공기청정기를 주력
상품으로 하다가 지금은 화장실용 비데에 촛점을 맞추고 있는 회사다.

지금까지 중소기업으로서 이회사처럼 일간지에 끊임없이 광고를 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회사는 거의 없었다. 어디서 이런 재력이 나올까.

이 회사는 이름이 꽤 알려졌긴 하지만 알고보면 생겨난지 이제 겨우 1년
밖에 안되는 애숭이기업이다. 그러나 애숭이라고 깔봤다간 몹시 놀랄만큼
빠른속도로 재력을 갖춰나가고 있는 특이한 기업이다.

유진산기가 설립된 것은 지난해 4월1일. 이 회사의 권유상사장(45)은
이날 단돈 3백만원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소위 구멍가게를 하나 내는데도
3억원이 드는 나라에서 3백만원으로 장사를 시작한다는 것은 사뭇 우스운
일이다.

그러나 그는 이돈으로 서울 신도림역 남쪽 2백여m쯤가서 있는 구로
구민생활체육관옆 40평의 시유지를 불하받아 컨테이너식 가건물을 짓고
ABS판매를 시작했다.

권사장은 이 장사로 지난해 9개월만에 1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더
놀라운 것은 올들어서다. 지난 넉달동안 40억원어치를 판매해냈다. 3백
만원으로 시작한 회사가 태어난지 1년만에 연매출 1백억원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엄청난 초고속 성장이다.

권사장이 만들어낸 이 고속성장의 비밀은 판도라상자에서나 끄집어내듯한
독특한 아이템의 선정 덕택이라는 게 주변사람들의 평가다. 화장실용
비데를 비롯 세륜기 공기청정기 무인방범시스템등 언뜻보기에 다량판매가
불가능할 것 같은 품목을 선택해 집중투자한다.

묘하게도 그가 선택한 품목은 계속 히트를 쳤다.

물론 그가 선택한 품목이 항상 히트를 쳤던 것은 아니다. 권사장은
유진산기를 설립하기 이전 5년간 산업기계류제조업체를 경영했다. 주로
공장자동화에 필요한 품목을 만들어 팔았으나 번번히 실패하고 91년초에는
끝내 문을 닫고 말았다.

이후 그는 거의 1년간 무일푼의 형편없는 실업자였다. 안양 집근처에
있는 기원에서 천원짜리 내기바둑을 두며 허송세월을 해야만 했다. 사업k
실패의 심한 고통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실업자기간동안 그가 내린 결론은 너무나 간단한 것이었다. 바로 "아이템
선정을 잘해야한다"는 거였다. 권사장은 "아무리 훌륭한 제품이라도
팔리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습니다"라고 잘라 말한다.

그러나 지금도 많은 기업의 사장들이"우리가 이렇게 많은 돈과 기술
인력을 들여 만든 제품인 만큼 당연히 잘팔려야한다"는 결론부터 내리고
제품을 출하하는 사례가 허다하다고 지적한다.

팔릴 수 있느냐를 먼저 생각하라. 그는 동료기업인들에게도 이점을 거듭
강조한다.

그렇지만 어떻게 3백만원으로 첫사업을 할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궁금하다. 맨처음 권사장은 구로5동에 가건물을 세운뒤 공채직원으로
김동길씨(31)한사람을 모집한 뒤 일단 한양상사라는 브레이크제조업체와
ABS판매계약을 맺는다.

이어 일간 경제신문에 5단9cm크기의 광고를 낸다. 이 광고를통해 1주일
만에 50개의 ABS를 팔았다.

여기에 자신을 가진 권사장은 신문에 전면광고를 내며 대리점도 모집
했다. 그는 대리점을 모집할 때 일반적인 요구조건인 보증금을 일체 받지
않았다.

전국에 2백개의 대리점을 갖춘 지금도 이회사는 대리점에 대해 일체의
보증금을 받지 않고 있다. 이 전략이 주효했다. 유진산기엔 남다른
경영기법도 숨겨져있다. 입사한 사원에 대해서는 일체 학력을 무시한다.

고졸이든 대학원졸이든 입사이후 승진과 급여에 차등을 두지 않는다.

권사장은 현직사원의 이력서를 보는 걸 금기시하고 있다. 물론 남녀
사이의 차별도 전혀 없다. 53명의 종업원중 친인척이 단1명도 없는
것은 중소기업으로서는 참 놀랍다.

이 회사의 고속성장비결은 이같은 특이한 경영전략이 잘 조합돼 이뤄진
것임에 틀림이 없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