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국이 어떤 것인가 하면..."

에노모토는 절로 웃음이 지어졌다. 그는 네덜란드의 해군학교에 사년반
동안이나 유학을 한 그런 사람이었으니, 한낱 행동대를 이끌고 칼만
휘두르고 다닌 히지가타 따위와는 상대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쉽게 말하면 여러 사람의 합의에 의하여 정사를 펴나가는 그런 나라를
뜻하는 거요. 천황이나 쇼군 같은 대를 잇는 절대 권력자가 없이 선거에
의해서 대표를 뽑아 정치를 해나가는 민주적인 국가를 공화국이라고
하오"

"아하- "

천황도 쇼군도 없다는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으면서도 히지가타는 신기한
듯 두눈에 호기심 같은 것이 번질거렸다.

"에노모토공에게 내가 한가지 물어보겠어요"

오도리가 입을 열었다.

"에소지의 후쿠야마에는 마쓰마에번이 있고, 하코다테에는 지난 봄에
신정부의 출장소가 설치되어 있다고 하는데, 그럼 우리는 그곳을 피해
섬 북부로 가서 황무지를 개척하여 새로운 국가를 만들겠다는 건가요?"

"그런 구체적인 문제는 앞으로 우리가 상의를 해서 결정해야지요. 먼저
에소지로 갈 것인가, 어쩔 건가 하는 것부터 합의를 봐야 되지 않겠어요?"

공화국 건설을 꿈꾸고 있는 에노모토인지라, 벌써부터 협의하는 태도가
민주적이었다.

히지가타가 불쑥 자기 의견을 늘어놓았다.

"에소지에 가서 공화국을 만드는 데는 대찬성입니다. 그러나 황무지를
개척해서 거기에다가 새로 만드는 것은 절대 반대예요. 우리가 뭐 피란민
인가요? 황무지를 개척하게... 하코다테와 후쿠야마를 점령해서 그곳에다가
공화국을 세우면 되잖아요. 그러면 개척하고 말고 할것도 없이 빠르고
좋잖아요. 안그래요?"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이 멎자 오도리가 말했다.

"에소지로 간다면 히지가타상이 말한대로 무력 점령을 하는게 옳아요.
마쓰마에번은 공순을 택해서 이미 신정부의 손아귀에 들어갔으니, 우리의
적과 다를바 없어요. 그러니까 무력으로 휩쓸어서 섬을 모조리 우리 손에
넣는 거예요. 그래야 나라를 세워도 나라답지 그들을 그대로 두고, 황무지
를 개척해서 만든다면 그꼴이 뭐겠어요. 한 개의 번에 불과하지, 나라라고
할수 있겠어요?"

"옳은 말이오"

나가이도 찬성이었다.

그렇다면 이미 의사가 집약된 것과 다름이 없어서 에노모토는 싱그레
웃음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