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케코의 아버지 나카노헤이나이는 청룡대에 속하는 사무라이였고,남동생
도요키는 주작대의 대원이었는데,며칠 전에 출진을 해서 싸움터에 나가있는
터였다. 그래서 다케코는 아버지와 도요키를 생각해서라도 적군을 몇놈
죽이고 죽는게 낫지않느냐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말이야 다케코,자고로 여자가 출진을 한 예가 없다구. 싸움은
남자들이 하는 걸로 되어 있어"

"전례가 없으면 어때요. 우리가 그 전례를 만들면 되잖아요. 그러면 역사에
남을 일이니까,오히려 더 좋지 뭐예요"

"그렇기도 하군. 좋아,그럼 나도 출진을 하겠어" 그러자 유코가 약간 놀라
듯이 말했다.

"엄마가 그 나이에?"

"왜,내 나이가 어때서? 마흔넷이 뭐 노인이라도 된다더냐?"
고코는 진정이었다. 그녀 역시 나가나다 솜씨가 보통은 넘는 터여서 비록
사십 중반이기는 하지만,얼마든지 싸워낼 자신이 있었다.

"그럼 엄마 이렇게 해요. 우리가 남장을 하는 거예요. 여자 복장으로는
싸우기도 불편하고,또 적군놈들이 아이즈번은 군사가 모자라서 여자까지
동원했다고 비웃을테니까요. 우리 번의 명예를 위해서도 좋지 않아요.
그리고 엄마는 나이가 들어서 여자 복장으로 나서면 좀 우습기도 하고요"

다케코의 말에 고코는, "좋아,그러자구" 쾌히 동의를 했다.

먼저 다케코가 커다란 경대 앞에 가서 앉았다. 그리고 묶었던 머리를
풀어 가위로 검은 윤이 흐르는 치렁치렁한 머릿결을 싹뚝 싹뚝 잘라
버렸다.

"자,유코,앉아. 내가 잘라줄테니까" 동생 유코가 경대 앞에 다소곳이
앉자,다케코는 그녀의 뒤에 서서 어깨까지 내려온 긴 단발머리를 한손으로
모아 걷어올려 그 머릿다발을 가위로 썩뚝 썩뚝 힘을 주어 잘랐다.

거울에 비친,머리가 잘려지는 자기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유코는
들릴 듯 말듯 나직이 한숨을 내쉬며 살며시 두 눈을 내리감았다.

고코는 다케코가 잘라 주겠다는 것을 마다하고,경대 앞에 앉아 손수 자기
머리를 잘랐다. 그리고 그녀는 세 모녀의 잘린 머리털을 한데 모아 종이에
싼 다음,빈 나무상자 하나를 가지고 와서 그속에 넣었다. 상자 뚜껑에다
가는 붓으로 세 모녀의 이름을 나란히 적었다. 말하자면 머리털의 관인
셈이었다.

"이걸 우리 세 사람의 넋으로 알고 묻자구. 그러면 서이를 합장(합장)한
무덤이 되는 셈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