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동표 <미국 딜로이트&투쉬 회계법인 파트너>

미 두나라 정부는 곧 경제협력대화(DEC)를 통해 "조세문제에 관한
양해각서"를 발표할 예정이다. 이 양해각서는 한미조세조약의 해석을
놓고 두나라 정부가 이견을 갖고 있던 부분을 DEC조세정책회의에서
논의한 다음 서로 합의한 내용을 담고있다. 그런데 여기저기서 흘러
나오는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이 양해각서의 해석을 놓고 두나라 정부가
커다란 입장의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우선 서울쪽의 이야기는 이렇다. 서울측은 미IRS가 한국계 기업에 대한
세무조사를 빈번히 하고 갖가지 세법규정을 비현실적으로 제정하여 대미
진출 기업들이 크나큰 불편을 겪고 있다고 지적하고,특히 이전가격 시행
세칙의 비교이익법이나 본사보증에 따른 이자경비의 손금부인 규정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이에대해 미국측은 이러한 우려를 "이해"하였고 시행세칙 제정때 이러한
우려를 "감안"하기로 약속했다. 이 내용이 침소봉대되어 서울의 어느
일간지는 심지어 미국 IRS가 이자경비 제한규정이나 이전가격 비교이익법을
한국계 기업에는 적용하지 않기로 합의했다고 보도하였다.

서울에서는 이 양해각서가 그동안 우리기업들이 미국에서 부딪쳐온 가장
부담스러운 세무문제들을 정부가 앞장서서 대변,미국측으로 부터 상당한
양보를 얻어낸 성공적인 작품으로 비쳐지게 되었다.

그러나 미국쪽의 이야기는 전혀 딴판이다. 우선 미국에서는 이 양해각서
에 이전가격등에 관한 한국정부의 우려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은 거론조차
되지않고 있다. 그리고 초점은 온통 한국 국세청이 그동안 조세조약을
지나치게 자의적으로 해석, 적용했던 것을 이 양해각서에 의해 바로잡게
되었다는데에 맞춰져 있다. 즉 한미조세조약의 "고정사업장" 조항과
"사용료"조항에 대한 국세청의 해석이 엉뚱해서 수많은 미국기업들이 피해를
입었고 피해당한 기업들이 미전국외국무역회(NFTC)를 통해 미정부에 호소,
항의해 왔기때문에 두나라가 조세정책회의를 갖게 되었으며 그 결과 한국측
이 국제 조세조약 해석에 관한 OECD의 일반원칙을 준수하기로 약속한 것이라
고 소개하고 있다.

미국측의 일방적인 승리로 비쳐지고 있다. 그 내용은 국세청이 고정사업장
개념을 지나치게 광의로 해석,심지어 한국에 설립한 자회사까지도 경우에
따라서는 미국본사의 고정사업장으로 취급하여 과세하였다는 것이다. 또
사용료(로열티)조항 역시 확대 해석하여 인적용역비나 물품판매대까지
로열티로 취급,원천징수세를 부과했다는 것이다.

또 미국회사가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한국에 판매하는 경우 그것은 단순한
물품의 판매행위인데도 국세청은 판매가를 로열티로 취급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측이 한국측에 OECD원칙을 따르도록 요청하였고 한국측이 이에
합의함으로써 양해각서가 서명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미 국세청에
세금을 납부한 미국기업들은 이 양해각서를 근거로 환급신청을 준비하고
있다고 보도되고 있다. 그리고 한국측이 그동안의 고집을 꺾고 이번에
양해각서에 합의 서명한 이유는 한국이 96년에 OECD의 가입을 원하고 있기
때문이며 OECD는 한국이 조세조약의 해석을 국제규범에 맞게 하는지를
보고나서야 가입을 허락할 것이라고까지 이야기되고 있다.

두나라 정부가 조세문제에 관한 양해각서의 일부만을 부각시켜 저마다
아전인수격으로 선전하고 있는것은 어쩌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인지도
모른다. 여기서 누가 양보하고 누가 이겼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
훨씬 큰 문제는 이것을 계기로 한미 두나라의 조세관계가 근본적으로
재검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행 한미조세조약은 1976년에 서명되어
1979년에 발효되었다.

20년전에 맺어진 조약이 90년대의,장차 21세기의 경제활동에 어울릴수가
없는것이다. 그 때문에 로열티 조항,인적용역조항,기타소득 조항등 수많은
문제가 산적해 있는 것이다.

한미조약은 당연히 다시 협상되어야 하고 전반적으로 수정되어야 한다.
그래서 미국에 진출한 우리기업들에 실질적인 혜택을 줄뿐만 아니라
미국기업들의 한국투자도 증대시키도록 유도해야 한다. 미국은 이미
수많은 나라와 70년대 이전에 맺었던 조세조약을 파기하고 새 조약을
맺었거나 새 조약을 위한 협상을 활발히 진행시키고 있다. 불행히도
한국은 현재 협상대상국도 아니고 가까운 장래의 우선협상국 리스트에도
올라있지 않다. 이번 양해각서를 계기로 전면적인 조세조약 협상이
시작되어야 하겠다.

그리고 법인세및 소득세를 다루는 조세조약 못지않게 중요한 조약이 또
있다. 그것은 사회보장세 조약이다. 이는 한국기업의 임직원이 미국에
주재원으로 근무하는 동안 미국의 사회보장세 납부를 면제받자는 조약이다.
어차피 한국인이 은퇴후 미국의 사회보장혜택을 받을것이 아니므로 현재
주재원이 납부하고 있는 사회보장세는 고스란히 미국 사회보장제에 대한
적선이 되고마는 셈이다.

주재원이 납부한 만큼 현지 자회사도 함께 납부해야 하기때문에
사회보장세 부담은 대미진출 기업에 이중부담으로 그 규모가 엄청난
것이다. 미국은 이미 영국 캐나다등 16개국과 사회보장세 조약을 맺어
이들 국가에서 온 기업인들에게 사회보장세를 면제해주고 있다. 또 일본
등 6개국과 현재 사회보장세 조약 협상을 진행중에 있다. 한국은 아직
이러한 조약의 협상대상국이 아니며 우선협상국 리스트에 들어있지도
않다. 그런데 경제협력대화(DEC)에서 최근 우리측이 이 문제를 거론했다고
한다. 우리정부는 현행 조세조약의 전면적인 수정과 새로운 사회보장세
조약의 협상개시를 위하여 적극적인 자세로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야 하겠다.
2000년대에 대비하여 한층 더 국제화되는 우리 국민과 우리 기업을 위해서
한미 조세관계가 반드시 다시 정립되어야 하겠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