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에 붙잡힌 한 순간.

언제부턴가 사진첩에서 자식들의 사진이 뭉텅뭉텅 빠져 나가기 시작했다.
아이들마다 자기들의 삶을 따로 기록하고 싶어하는 때문이었다.

나는 따로 정리된 한 아이,한 아이의 사진첩을 보면서 따뜻했던 순간
순간의 기억을 옛 심연속에서 건져 낸다. 찰깍,찍히며 찍으며 동글동글
품어내던 웃음소리가 들린다.

내겐 지난 겨울,참으로 귀한 만남이 있었다.

딸 아이가 배필을 정해 약혼하였던 것이다. 딸 아이는 대학을 졸업하고
오래 계획하던 좀 더 넓고 깊은 전문분야의 학문을 위해 이국만리로 유학을
떠났었다.

우리 부부는 여기저기 귀한 젊은이들과의 맞선도 사귐도 유학을 핑계삼아
뒤로 미뤘다.

아이의 배필로 우리는 부도 명예도 권력도 원하지 않았다. 다만 지혜가
있어 하나님을 경외하고 마음이 따뜻하여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면
충분했다.

그런 사람을 만나도록 3년 전부터 기도하기 시작했다. 멀리 있어 마음
졸이며 아파하면서도 하늘만 바라보며 기도할 뿐 아이들에겐 사랑도
감추고 눈물은 물론 마음 약한 말 한마디도 감추었다.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께선 그 먼곳에 딸아이의 배필을 이미 준비하고
계셨다. 우리 부부는 딸 아이의 배필이 너무도 사랑스러워 아직 익숙하지
않은 얼굴이 궁금할때마다 여러 표정의 사진을 들여다 보곤 상상하며 정을
쌓는다.

어쩌면 하나님께선 우리에게 주실 자식을 여러가지 여건 때문에 사돈 댁에
맡겨 키우게 하셨고 사돈 댁의 아이를 우리에게 맡겼다가 서로 배필이 되게
하시는 거라고 생각했다.

늦게 찾은 자식이니 더욱 반갑고 사돈께는 마냥 고마움만 절절하다. 꽃 한
송이 작은 새 한마리 키워도 그 기쁨이 비길데 없거늘 자식을 낳고 키우는
일보다 더한 감동과 행복이 세상에 또 있을까.

성경엔 자식은 하나님이 주신 상급이라했다. 진정 인간사에 자식보다 더
큰 상급은 없으리라.

때로 요즈음 딸아이의 소식을 들은 지인들이 축하와 더불어 섭섭하겠다는
인사를 해올 때,나는 부모와 자식에 대한 생각을 다시 정리한다.

이제는 부모를 떠나 부부가 한 몸을 이루는 큰 비밀을 간직하는 두사람이
그동안 부모에게 맡겨졌었고 그들은 이제 그들 자신이 부모에게 받았던
청지기로서의 역할을 이어받아 우리와 같은 여정을 걸으며 또 하나의
고리를 꿰리라.

"곱게 키워서 멀리 미국까지 보내주시니 감사합니다. 미국에서는 사실상
자식이 대학에 입학하여 기숙사에 들어갈때 이미 헤어지는 연습이 됩니다만
,이 사람(사위를 지칭함)이 잘 해낼 겁니다. 우리야 새 사람이 힘들지
않도록 옆에서 도와줘야지요"

언제나 새로운 만남이란 가슴 설레고 즐거운 일이지만 자식을 얻고 그
자식의 부모를 만남이란 진정 하늘이 내리신 일인만큼 소중히 감싸
안으리라.

둥지를 틀고,알을 품고 새끼를 위해 부지런히 먹이를 나르던 많은 날들.
이제 자식을 다 내보내고 나면 빈 둥지에 곱고 소중했던 추억이 남을
것이다.

아이들이 새 사람과 틀어낼 둥지,그리고 건강한 삶의 짹짹거림은 이제
우리 몫이 아니다.

나는 그동안 미뤄왔던 주님의 일을 계획하며 지금까지 주님을 기다리시게
한 죄송함과,기다려 주신 감사함을 한데 묶어 새로운 믿음의 둥지를 틀
꿈에 부푼다.

이제는 날아라,아이들아.

너희의 날개로 너희 둥지를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