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호 현대정밀사장(49)은 5개월전만해도 은행직원이었다. 지난해 10월
별안간 사장이 됐다. 평범한 은행인인 그가 갑자기 기업인이 될 거라는
것은주변에서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는 특별히 돈많은 집 아들이 아니다. 대학을 졸업한 뒤 외환은행에
입사,20년간 근무했다. 기업을 경영해본 경력은 전혀 없다. 그럼에도
이사장은 어느날 느닷없이 중견기업의 오너사장으로 변신했다. 어디서
그런 돈이 생겼을까. 은행직원으로서 어떻게 중견기업을 인수할 기회를
가졌을까.

이런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것은 이사장이 인수한 현대정밀은
조그마한 회사가 아니어서다.

청주공단관리사무소 맡은편 요지 1천1백평의 공장에 첨단기계 제조설비를
갖춘 업체다. 항공레이더장치 부품을 자기 기술로 개발, 금성정밀등에 납품
할 만큼 첨단 기술을 가진 기업이다.

총자산은 25억원규모.

이사장에게 이회사를 얼마에 인수했는지 묻자 "대답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현대정밀 공장을 구경하며 이틀간을 함께 지냈다. 그제사 그는
색다른 방식의 돈모으는 법과 기업 인수과정등에 관해 조금씩 털어놨다.

그가 처음 돈맛을 알게된 것은 증권투자를 통해서였다고 한다. 그는 91년
그간 모아둔 1천만원의 돈으로 증권투자를 시작했다. 그가 증권투자로 재미
를 본 기법은 기발하지만 단순했다. 아침신문을 받아들면 결코 톱기사에
신경을 쓰지않았다.

증권기사이상으로 자신이 투자한 회사사장의 동정,단신,인사란,부음,1단
짜리 기업기사 및 외신등 하찮은 기사만 체크했다. 경제단체 케텔등의
정보도 하찮은 것에 신경썼다. 이를 기업별로 스크랩하고 묶었다. 톱
기사는 이미 정보로서의 가치를 잃었기 때문이라는 판단에서 그렇게 했다.

자료를 1년이상 스크랩하는 과정에서 그는 정보를 조합하는데 귀재가
됐다. 그의 투자판단은 이후 계속 적중했다. 1천만원을 2년만에 1억1천
만원으로 불려냈다.

여유돈이 1억원이상 생겨나자 이사장은 제조업체를 창업, 사장이 될려는
꿈을 남몰래 키운다. 그러나 시장조사를 해본 결과 아무리 영세부품공장을
설립하려해도 7억원이상이 든다는 사실을 알고 낙망한다.

마침 이사장은 외환은행에서 법정관리업무를 맡게된다. 이 업무를 담당
하면서부터 부채가 많은 기업의 경우 몇푼들이지 않고 기업을 인수하는
방법을 알게된 것이다. 여유돈과 퇴직금을 합하면 기업을 가질 수도
있다는 판단이 섰다.

이사장은 지난해 상반기부터 성업공사에서 나오는 물건을 비롯 부도를
내고 각 금융기관의 정리대상에 올라 있는 기업의 정보를 파악했다. 기은
등의 정리과등에 나온 제조업체들가운데는 4억원이하로도 공장을 매입할
수 있는 것이 많았다. 그나마도 3년 또는 5년까지 할부로 매입할 수 있는
조건까지 내건 공장이 10여개나 있다는 정보도 알아냈다.

그러나 이사장은 이들 정리대상기업을 인수하지 않았다. 일단 부도를
내거나폐업한 기업을 인수해서 다시 세우려면 엄청난 자금이 소요되는데다
오랜 기간이 걸린다는 판단이 섰다.

이때 발견해낸 것이 현대정밀이었다. 이 회사는 당시 부채가 꾀많았다.
더욱이 소유주인 김갑식 사장이 회사의 경영에 뜻이 없다는 것이었다.
매도할 사람을 찾는다는 정보를 알게되면서 인수는 순식간에 이뤄졌다.

회사를 인수하면서부터 그는 청주지역에서 가장 바쁜사람이 됐다. 경영
정보를 얻기위해 가능한 많은 사람을 만난다. 그의 정보조합능력은 기업
경영에서도 금방 드러났다.

현대정밀 자화전자 청우정밀등 3개업체가 각자 가진 기술을 조합,레이저
프린터의 핵심부품인 마그네틱롤러를 개발해낼 수있게 한 것이다. 또
주문용기계로만 생각했던 반도체칩삽입기 자동그래머어저스트먼트등도 해외
기술자료를 통해 미국 마그네트컴프사등에 수출할 수 있는 기회를 열었다.

그는"가장 바삐 움직이는 사람에게 항상 가장 중요한 정보가 모인다"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