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동부의 자동차도시 디트로이트. "1백년래 최악"이라는 한파가
몰아닥쳤던 지난 겨울내내 이 지역만은 "봄"이 한창이었다. GM 포드
크라이슬러등 미국자동차업계의 "빅3"이 10년만의 흑자반전과 더불어
"돌아온 봄"을 만끽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빅3이 지난 한햇동안 거둔 수확은 미국기업들 전반이 그동안의 "저팬
(일본)컴플렉스"란 악몽을 떨쳐내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빅3은 지난해 88년이후 최고수준인 1천90만대의 자동차를 생산하면서
미국시장에서의 점유율을 73%로 1%포인트 끌어올렸다. 반면 도요타 혼다
닛산등 일본차업체들은 미국시장 점유율이 1%포인트 떨어진 73%로
뒷걸음질,10년만에 처음 마이너스로 돌아서는 수모를 겪었다.

미국언론들로부터 "거대한 몸집을 가누지못한채 스러져가는 현대판 공룡"
(93년 5월 포천지)이란 비아냥까지 감수해야했던 GM등 빅3은 이제
"미국주식회사(Corporate America)의 자존심을 되살려준 선봉대"(94년1월
유에스에이 투데이지)란 "찬탄"을 받는 존재로 바뀌었다. 천덕꾸러기가
기대주로 거듭난 셈이다.

빅3의 "변신수칙 제1조"는 "강한 적을 이기려면 적으로부터 배우라"(존
커낸 샐러먼 브러더스사기업분석가)는 것. 후발주자인 도요타등
일본자동차메이커들로부터 "농락"을 당했던 빅3이 바로 이들 일본업체의
경영관리방식을 철저히 연구,일본식경영기법을 도입하면서 회생의 깃발을
올리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부품업체의 일본식 전문계열화 도입. 크라이슬러의
경우 부품의 효율적인 조달여부가 생산성과 직결된다는 결론을 내리고
1천2백개가 넘었던 부품업체를 지난해 1천1백개사로 줄인데 이어 오는
2000년엔 이를 7백50개로까지 감축한다는 계획을 밀어붙이고있다. 경쟁차
를 분해,모방과 개선을 추구하는 "벤치 마킹(bench marking)"기법은 일본
메이커들의 전유물로 인식됐던 것이지만 최근 빅3들에도 일반화 되고있다.

크라이슬러는 이같은 방식으로 일본업체들의 신차개발및 생산방식을 모방,
종전엔 개발기간이 평균60개월에 개발비용이 40억달러 들던 것을 불과 39
개월간 13억달러만을 들여 배기량 2천cc짜리 "네온(Neon)"이란 소형승용차
를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가격은 동급차종보다 5백달러나 낮은 수준.

"디트로이트의 대학살"로 불리는 근로자의 대량해고와 공장폐쇄등
감량경영은 기본전략이다. GM의 경우 9만1천명에 달했던 사무직원을
작년말현재 7만1천명으로 무려 22%감축한데 이어 올해에도 5천명을 추가
감축한다는 계획이다. 물론 인력감축이 곧 경영효율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절감된 인건비이상의 투자가 컴퓨터등 전산정보처리분야에 들어
간다.

스티븐 메이들라인 포드자동차기획실장은 "과거엔 디자인 생산
애프터서비스부문을 따로 운영했지만 지난해 이들 부문을 통합,인력을
줄이는 대신 전산통합관리를 통해 신차종개발등에서도 시간을 훨씬
절약하는등 시너지효과를 거두고있다"고 설명한다.

"공룡"의 또다른 대명사로 불려온 컴퓨터회사 IBM도 요즘 "살아남기위한
사투"에 한창이다. 리스트럭처링(사업재편)이란 점잖은 말로 표현하고는
있지만 사투의 핵심은 그동안 신주단지처럼 여겨온 종신고용등 이른바
"IBM주의"를 내던지는 작업.

지난 1911년 설립이래 80여년간 스스로의 최대자랑으로 삼아온 "한번
IBM에 입사한 사람은 제발로 걸어나가기전에는 결코 해고하지 않는다.
자발적 퇴직자도 재입사를 희망하면 받아들인다"던 "IBM적 종신고용
(Non-layoff)제도"를 내팽개치고 종업원의 대량감원에 나선 것은 변신의
대표적 예다. 작년말현재 전체 고용인력은 25만6천명으로 1년간 4만5천
명을 잘라냈다. "승승장구"를 거듭하던 시절 여기저기서 사들였던 미국
각지의 부동산들도 처분하기 시작했다.

올해안으로 미국내 전체 사무실면적을 91년의 거의 절반수준으로 줄인다는
계획이다.

그동안 독불장군식으로 고집해온 대형컴퓨터위주의 생산시스템에서 과감히
탈피,어떠한 크기의 컴퓨터에도 사용될 수있는 초고속 마이크로프로세서
개발에 나서는등의 영업전략 수정도 거듭나기위한 몸부림의 일단을
보여주는 것이다.

자동차업계의 빅3과 마찬가지로 IBM역시 작년4.4분기에 3억8천2백만달러의
흑자를 내면서 92년 2.4분기이후의 첫 분기기준 순익을 기록,리스트럭처링을
통한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올리는데는 일단 성공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IBM과 더불어 종신고용을 전통으로 삼아왔던 종합컴퓨터업체 디지털
이퀴프먼트사 역시 작년 이후 종신고용제도를 포기하는 것과 더불어
22개사업부문을 6개사업부문으로 통폐합하고 공장을 대거 폐쇄하는등의
"리스트럭처링"을 단행했다. 한때 13만명에 달했던 종업원을 올1월말 현재
9만3천명으로 4분의 1가량 줄였고 35개에 이르렀던 세계각지의 공장도
20개로 정리했다.

"디지털이 1백가지 일을 다할 수는 없다. 1등을 할수없는 사업은
미련없이 버려라"는 독기서린 경영진의 특명이 내려졌다.

인텔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등 반도체업계는 자동차나 컴퓨터업체들에
한발 앞서 리스트럭처링을 마무리, 지난해 세계시장점유율을 41.9%로
끌어올리면서 8년만에 일본을 제치고 1위로 올라서는등 미국산업계의
"대반격"을 이끌고있다.

미국반도체업계는 일본업체들의 "공세"로 인한 좌절도 다른 업종보다
한발앞서 겪었다.

지난 72년 세계최초로 D램을 개발했던 인텔사는 이 분야에서 일본업체들에
추격을 받게되면서 80년대 중반엔 적자의 늪에 빠지는 곤경을 치렀다.
대량의 인원감축과 공장폐쇄라는 "통과의례"를 치르고도 경영이 호전되지
않자 과감히 D램생산을 포기,마이크로프로세서 분야로 주력사업을 전환하는
결단을 단행했다. 지난해 인텔은 82억5천만달러의 매출에 21억3천만달러의
순이익을 냈다. 1백원어치를 팔아 25원이상을 이익으로 챙기는 "알짜배기
회사"로 거듭난 셈이다.

이처럼 인텔이 화려하게 되살아난데는 "경쟁업체의 고사를 겨냥해"
연구개발에 나설만큼 "독기"를 품고 기술개발을 추진한데 있다. 작년
디지털사가 알파칩을 개발,연산속도가 빠른 마이크로프로세서를 내놓자
"꿈의 반도체"라고 불리는 펜티엄칩을 개발하고도 곧바로 686 786칩개발에
착수했다. 단순한 제품판매경쟁을 넘어서 상대기업을 아예 고사시켜버리
겠다는 의도까지를 담은 전략이다.

일본기업들로부터 통한의 고배를 강요당한 뼈아픈 경험이 있기에
"무한경쟁"의 교훈을 스스로 실천하고있는 셈이다.

"인텔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자전거이다. 기술개발이라는 페달을
밟지않으면 쓰러지지만 페달을 밟고있는한 어느 누구에도 뒤질 이유가
없다"(앤드루글로브 인텔사사장). "공룡"이라는 뼈아픈 손가락질을 받던
미국기업들의 대반격이 본격화되고 있음을 나타내주는 말이기도 하다.

<이학영 방형국 조주현 기자, 최완수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