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서로 인연을 맺고 활동하며 자신의 보람을 성취하게 된다.
지난 반세기 나의 사업인생을 돌이켜 보면,나는 유난히 이세상의 길과
많은 인연을 맺으며 살아왔다.
온 나라가 해방의 감격에 들떠있던 1945년 나는 땅위의 길을 누비는
한진상사를 창립했으며 67년 대진해운에서 77년 한진해운으로 이어지는
바다의 길을 닦았다. 또 61년 한국항공에 이어 69년에는 국영화하여
하늘에도 길을 냈다.
"인생의 길"그 대부분을 "수송외길"에 종사하며 새 길을 닦고 개척해
온것이다. 땅과 바다와 하늘의 길을"가장 빠르고 정확하게"연결하여
삶의 공간을 확대시키는 것은 바로 수송사업의 큰 보람이기도 했다.
남의 흉내나 내는 모방사업,남이 닦아 놓은 길을 뒤쫓으며 훼방하는
얌채 사업은 나로서는 불가한 일이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업에 무모하게
뛰어들거나 정도이상으로 확장하는 것도 생리에 맞지 않는 일이다.
보수적이라는 지적이 있으면 나는 사업확장을 못한 것이 아니라 안한
것이라고 답변한다.
남이 하니까 욕심을 내거나 분수를 모르고 자꾸만 사업을 키운다는것이
능사가 아님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낚시대를 열대,스무대 걸쳐놓는다고
해서 고기가 물리는 것은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내가 맨처음 운송사업을 택한것도 그 외길의 인생에 남다른 자부심을
갖는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지난 50여년간 사업일선에서 뛰어다니면서 온갖 풍상을 다겪어
오는 사이에 나는 고난이란 고난은 모두 뼈속깊이 체험했다.
빈손으로 시작했기에 남보다 더 열심히 뛰어야했고 남이 세시간 생각할때
나는 여섯시간을 생각해야했다. 남이 안하는 일을 하려니까 한발 앞지르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내가 이십대의 젊은 나이로 처음 사업에 궁리를 거듭할때 나는 개성상인
들은 어떻게 성공하는가를 연구하는데 몰두했다.
실제로 개성으로 들어가는 초입에 있는 야다리라를 곳에서 삼포를 많이
경작하는 개성상인이 거름으로 사용할 인분을 사들이는데,혹시 물이 섞여
있는지 검사하기 위해 앙금을 제쳐가면서 오줌을 찍어 맛을 보는 장면을
본적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겨울철에 장사길을 떠날 때면 독약의 일종인 소량의 비상을
먹고 추위를 참는것과 동상에 걸리지 않도록 버선속 발가락사이에 고추를
끼운다는것을 알고 놀란적도 있다. 만일에 대비하는 정신이었다.
집을 지어 대청 마루에 낼때도 겉만 번지르르하게 적당히 니스칠이나 하고
마는것이 아니라 콩기름을 내어 깊이 배도록 여러번 바르고 그걸 사기그릇
으로 분질러 반들반들하게 해놓았다. 검약하면서 마루 수명을 길게하는
생활의 지혜를 실천하는 것이 몸에 밴 까닭이다.
술도 값이 싼 소주 외에는 잘 마시지 않았고 밥을 함께 먹어보며 상대방의
인품을 평가하기도 하는 그들이었다. 밥을 남기면 낙제였고 양이 많다
싶으면 미리 덜어 놓아야 했다. 식사의 끝무렵에는 반드시 물로 말아
먹어서 밥알을 남기지 않아야 했던 것이다.
지독하다시피 만큼 절약하면서도 항상 경우에 밝고 신용을 재산처럼
여기는 개성상인들의 정신에 나는 큰 깨우침을 얻었다. 아직 젊은나이로
사업을 시작한 나에게는,이러한 살아있는 철학이 훗날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커다란 교훈이 됐다.
또한 사업을 성공시키려면 무엇인가 원칙이랄까 철학을 가져야지 철학이
없이는 성공도 불가능하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