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극는 없다. 세계 8대불가사의 가운데 두개의 축조물을 만들어 후세에
전해주고 있는 것이 그것을 말해 준다. 만리장서과 병마용군단을 모함한
진시황등이 그것이다.
중국 서부지방의 요새인 가용난에서 압록강에 이르는 3,200km의 만리장성
을 구축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214년. 오늘날에 남아 있는 만리장성은
한나라와 명나라의 황제들이 재건하고 연장해놓은 것이지만 진시황제는 그
초기의 대역사에 30만명의 군대와 100만명의 민간인. 중노동형을 선고받은
죄수들을 투입하여 9년동안 공사를 했다.
후세사람들은 이 성을 "세계에서 가장 긴 무덤"이라고 일컬었다. 노역에
동원된 수많은 사람들이 탈진할 때까지 혹사당하고 외진 곳이라 먹을것도
제대로 공급 받지 못해 죽게 되어 성백의 토대에 묻혔기 때문이다.
묘역의 폭이 무려 5km에 이르는 진시황의 축조에도 무려 70억만명이
동원되었다. 지금은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섬서성 려산기슭의 화려했던
아방궁과 산을 연상시킬 정도로 원래의 봉분 높이가 100m에 이르렀다는
진시황릉(현재는 동서길이 345m,남북길이 350m,높이가 43m다),능에서 동쪽
으로 1.5kn 떨어진 2만 평방미터의 병마용갱등의 대역사에서도 강제노역
동원이 극치를 찾아 볼수 있게 된다.
그것들 가운데 우리의 흥미를 끄는 것은 병마용군단이다. 진시황제는
저승에서 자기를 지켜줄 병마용을 만들것을 명령했다. 관리와 민간인들로
하여금 장군과 장교,병사와 말등의 형상을 한 실물크기의 토우 7,000여개를
손으로 빚게해 묘역지하에 매장케 했던 것이다.
진시황이 죽고 1세기가 지나지 않아 기술된 사마천의 "사기"에는 진시황릉
과 아방궁에 관한 것은 언급되어 있으나 병마용에 관해서는 한마디도 나와
있지 않았다. 농부가 우물을 따라 병마용을 발견 1974년 이전까지는 그
존재가 세상에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았다.
2200여년전의 지하조각품의 정화인 제1호갱 병마용군단이 발굴되어 공개
되었을때 놀라움은 컸다. 제1,3호갱의 발굴에 이어 제1호갱의 토용보다
훨씬 정교한 것으로 알려진 제2호갱의 병마용 발굴작업이 올10월부터 시작
된다는 소식에 관심이 가게 된다.
영생불살을 갈구하면서 모진 학정을 자행했던 진시황의 표징인 지하병마용
군단의 완전한 모습을 볼수있는 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