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쟁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직장을 그만두고 싶어질 때가 있다.
윗사람의 눈치를 봐야하는데다 언제 실직을 당할지 모르는 샐러리맨신세
보다는 독립을 해서 사업을 해봤으면 한다. 나도 사장이 되었으면 한다.
그러나 선뜻 이를 결행하지는 못한다. 첫째 돈이 없다. 둘째는 무슨
사업을 해야할지 모른다.

유문개발의 문병권사장(43)은 6개월간의 고민끝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사장의 길을 택한 사람이다. 경제단체에서 기업조사업무와 기업애로사항
건의업무만 10년간해온 그는 "기업경영에 관한사항이라면 나도 알만큼 안다"
라는 생각에서 그동안의 지식을 바탕으로 사업을 해보기로 마음먹고 지난
90년5월 사표를 던진다. 구두쇠로 이름난 문사장은 고대 물리학과 1학년때
부터 가정교사 날품팔이등을 해서 차곡차곡 모아온돈 8천만원과 자기소유의
아파트를 전세로 전환해 만든돈 7천만원,빌린돈 4천만원등 총1억9천만원
으로 사업을 시작한다. 때마침 평소 잘아는 선배로부터 그가 경영하던 중일
전자를 인수할 생각이 없느냐는 제의를 받자 곧장 응한 것이다. 과장급
월급쟁이에서 일약 사장이 된다. 통신기기부품을 생산하는 종업원 30명규모
의 중일전자를 인수한 그는 의욕적으로 사업을 확장한다. 광명시 광명6동
347의 7에 있는 80평규모의 공장에 컨베이어도 보강하고 종업원도 10명정도
더 늘린다. 이를 위해서는 돈이 더 필요했다. 설비투자에 소요되는 돈은
처남으로부터 4천만원을 빌려 썼다.

일단 출발은 괜찮았다. 구로공단에 있는 W사로부터 전화기부품납품권을
얻어낸 것이다. 광명시는 다리만 건너면 구로공단이어서 부품을
운반하기도 좋았다. PCB(인쇄회로기판)에다 집적회로와 다이오드등
3백70개의 부품을 조립,납품하면 45일짜리 어음으로 대금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6개월이 지나면서 그는 예상치 못한 곤경에 빠진다. 모기업인
W사로부터 납품단가를 30%나 깎으라는 명령이 떨어진 것이다. 물가상승및
임금인상등을 감안할때 단가를 10%정도 인상해줘야하는데 오히려 30%를
내려야하니 살아남을 길이 없어졌다. 트럭1대분인 부품4백개당 적어도
1백만원은 받아야하는데 75만원을 주되 그것 마저 장기어음을 끊어 주는
것이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종업원들이 보너스를 넉넉히 주지않자
10여명이 다른 회사로 옮겨버린 일이 일어났다. 이로인해 납품기한을
하루 못맞춘 사건이 겹친다. 제시간에 납품을 못하자 나이어린 모기업
구매과장으로 부터 태어나서 가장 심한 욕지거리를 듣게 된다. 한번만
다시 어기면 납품권을 박탈하겠다는 경고까지 받는다. 91년말의 일이다.
납품기한이 12일이내로 다가왔는데 부품은 절반도 조립하지 못한 사태가
다시 일어났다. 눈앞이 캄캄했다. 나머지 20여명의 종업원들에게 야간근무를
하자고 종용했다. 그러나 단1사람도 이에 응해주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사장이 스스로 공장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사장이 현장에서 일을 하자
2사람이 야간근무에 응해줬다. 시골에서 올라온 사무직직원인 집안조카와
현장책임자가 응해준 것이다. 이날부터 문사장은 4개월을 거의 밤잠
못자고 일했다. 쌓여가는 적자때문에 눈물과 한숨으로 밤잠을 안자며
일하기 시작한지 5개월이 지나자 목뒤 근육이 굳어지는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며 목을 전혀 움직일 수 없게 됐다. 몸과 정신이 마비돼 결국은
병원으로 실려가는 최악의 신세가 됐다. 그는 한때 연간 1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소기업의 사장이 돼보긴 했으나 결국 1억6천만원의 빚만 남긴채
주저앉고 말았다. 빚청산을 하면서 친지들이 모아 준 돈으로 지난해 10월
유문개발을 설립, 재기의 발판을 다지고 있는 문사장은 요즘 주변의
월급쟁이들을 만나면 이렇게 충고 한다. "사업 그거 정말 아무나 하는거
아닙니다" 중소기업사장의 길은 샐러리맨의 길보다는 너무나 더 험난하다고
거듭 강조한다.

<이치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