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비망록] (124) 박성상 <전 한국은행 총재>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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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년7월 나는 조사2부장 발령을 받고 귀국준비를 서둘렀다. 런던사무소장
시절은 나에게는 참으로 유익하고 즐겁고 행복했던 때로 기억에 남아있다.
나는 늘 "어째서 선진국인 영국과 프랑스 독일은 잘사는데 바로 옆 나라인
스페인 포르투갈은 가난한 후진국으로 남아있는가. 또 이탈리아는 2차대전
후 똑같은 후진국이었는데도 급속한 경제성장을 거듭하고있는 반면 스페인
은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가"를 궁금해 했다.
정치적 안정이 경제를 발전시킨다고 믿고있는데 이탈리아는 소수정당들에
의한 연립정부가 1년이 멀다고 불신임으로 물러나고 있는데다 때로는 좌경,
때로는 우경 정부가 나라를 흔들고 있는데 경제는 계속 발전하고 있었다.
스페인은 프랑코독재정권하에서 정치는 안정되어 있는데도 경제는 발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그래서 경제는 정치보다 정부의 정책에 그 성패가 달려있다고 믿게
되었다. 이탈리아는 중앙은행총재가 12년동안 계속 경제를 지키고 있었고
재무장관도 8년동안 바뀌지 않았다. 물론 장관이 자리를 오래 지키는 것
만이 능사는 아니다.
그들이 취한 경제정책이 성공적이었기 때문에 그자리를 오래 지킨 것이
긍정적이었다는 얘기다. 내가 각종지표로 판단하기로는 그들이 취한 효과
적인 정책은 한마디로 "나라의 돈관리를 잘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경제는 돈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말(언)이나 정치적 캠페인
이나 행정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정치인들은 행정력으로 경제를 돌아
가게 할 수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많은 후진국들이 경제를 발전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탈리아는 제조업과 수출에 종사하는 기업을 위해 환율및 금리조정 융자
지원등 정부차원의 정책을 동원,생산잘하고 수출잘하면 돈벌 수 있게 해
주었기 때문에 기업은 돈벌기위해 생산확대 수출증대에 신바람나게 나섰던
것이다.
이에반해 스페인은 환율 금리 융자등의 경제정책수단등으로 공업화의 기본
이 되는 제조업과 수출기업을 중점지원하고 있지않았다.
경제는 기업인의 투자와 생산활동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실감할수
있었다.
서독을 방문했을때 베를린 장벽너머로 동베를린을 바라보며 정치의 냉혹
함을 슬픈마음으로 지켜본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내가 올라갔던 나무로
만든 조망대 바로 뒤에는 차들이 분주하게 질주하는데 동베를린의 거리는
일요일이라 그런지 개미 한마리도 움직이는것 같지않았다. 다들 집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동정이 앞섰다.
국민을 공평하게 잘살게 한다는 공산주의이념을 앞세우고 있는 공산독재자
들이 정말로 국민을 위하고 있는 것인지,아니면 자기정권을 유지하고 백성
위에 군림하기 위해 이데올로기로 위장하고 있는게 아니냐는 생각에 잠겨
조망대위에 오래 머물렀던 기억도 있다.
귀국준비를 하면서 좀더 있었으면 공부도 더할 수 있고 역사 깊은 유럽
문명을 좀더 배울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도 들었다.
그러나 나는 그당시만 해도 한국의 근로자들이 박봉에 허덕이고 있는데
해외근무자라는 이유로 그나라의 생활수준을 유지할수있는 높은 임금을
받았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또 나와 가족에게는 런던생활이 다시는
누릴 수 없는 풍요롭고 행복한 생활이었다고 생각했다.
런던의 금융인들 및 주영한국대사관 직원들과 석별의 정을 나누고 뉴욕
워싱턴 로스앤젤레스를 거쳐 9월중순께 귀국했다.
시절은 나에게는 참으로 유익하고 즐겁고 행복했던 때로 기억에 남아있다.
나는 늘 "어째서 선진국인 영국과 프랑스 독일은 잘사는데 바로 옆 나라인
스페인 포르투갈은 가난한 후진국으로 남아있는가. 또 이탈리아는 2차대전
후 똑같은 후진국이었는데도 급속한 경제성장을 거듭하고있는 반면 스페인
은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가"를 궁금해 했다.
정치적 안정이 경제를 발전시킨다고 믿고있는데 이탈리아는 소수정당들에
의한 연립정부가 1년이 멀다고 불신임으로 물러나고 있는데다 때로는 좌경,
때로는 우경 정부가 나라를 흔들고 있는데 경제는 계속 발전하고 있었다.
스페인은 프랑코독재정권하에서 정치는 안정되어 있는데도 경제는 발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그래서 경제는 정치보다 정부의 정책에 그 성패가 달려있다고 믿게
되었다. 이탈리아는 중앙은행총재가 12년동안 계속 경제를 지키고 있었고
재무장관도 8년동안 바뀌지 않았다. 물론 장관이 자리를 오래 지키는 것
만이 능사는 아니다.
그들이 취한 경제정책이 성공적이었기 때문에 그자리를 오래 지킨 것이
긍정적이었다는 얘기다. 내가 각종지표로 판단하기로는 그들이 취한 효과
적인 정책은 한마디로 "나라의 돈관리를 잘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경제는 돈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말(언)이나 정치적 캠페인
이나 행정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정치인들은 행정력으로 경제를 돌아
가게 할 수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많은 후진국들이 경제를 발전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탈리아는 제조업과 수출에 종사하는 기업을 위해 환율및 금리조정 융자
지원등 정부차원의 정책을 동원,생산잘하고 수출잘하면 돈벌 수 있게 해
주었기 때문에 기업은 돈벌기위해 생산확대 수출증대에 신바람나게 나섰던
것이다.
이에반해 스페인은 환율 금리 융자등의 경제정책수단등으로 공업화의 기본
이 되는 제조업과 수출기업을 중점지원하고 있지않았다.
경제는 기업인의 투자와 생산활동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실감할수
있었다.
서독을 방문했을때 베를린 장벽너머로 동베를린을 바라보며 정치의 냉혹
함을 슬픈마음으로 지켜본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내가 올라갔던 나무로
만든 조망대 바로 뒤에는 차들이 분주하게 질주하는데 동베를린의 거리는
일요일이라 그런지 개미 한마리도 움직이는것 같지않았다. 다들 집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동정이 앞섰다.
국민을 공평하게 잘살게 한다는 공산주의이념을 앞세우고 있는 공산독재자
들이 정말로 국민을 위하고 있는 것인지,아니면 자기정권을 유지하고 백성
위에 군림하기 위해 이데올로기로 위장하고 있는게 아니냐는 생각에 잠겨
조망대위에 오래 머물렀던 기억도 있다.
귀국준비를 하면서 좀더 있었으면 공부도 더할 수 있고 역사 깊은 유럽
문명을 좀더 배울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도 들었다.
그러나 나는 그당시만 해도 한국의 근로자들이 박봉에 허덕이고 있는데
해외근무자라는 이유로 그나라의 생활수준을 유지할수있는 높은 임금을
받았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또 나와 가족에게는 런던생활이 다시는
누릴 수 없는 풍요롭고 행복한 생활이었다고 생각했다.
런던의 금융인들 및 주영한국대사관 직원들과 석별의 정을 나누고 뉴욕
워싱턴 로스앤젤레스를 거쳐 9월중순께 귀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