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 이어온 맛 '이문 설렁탕'집..1905년 개업 서울토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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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벽두부터 "서울토박이"에 관한 얘기가 장안의 화제로 떠오르고 있다.
3일은 서울시가 서울토박이에 대한 기준을 마련하고 해당 시민들로부터
신청을 받기시작한 첫 날 이었다.
이날 서울시내 동사무소와 구청및 본청에는 서울토박이임을 신청하려는
시민들과 이에 관한 문의전화가 홍수를 이뤘다.
서울토박이문제는 그동안 자격요건을 둘러싸고 논란도 많았다. 신청이
마감되는 갑술년 3월쯤에는 어쨌든 이 문제에 대한 매듭이 지어질것 같다.
그러나 서울토박이는 사람뿐만아니라 가게 음식점등의 유형재도 해당될 수
있다.
서울 공평동 화신백화점 뒷편에 위치한 "이문설렁탕"집은 전형적인 서울
토박이 음식점으로 꼽히고있어,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 설렁탕전문 음식점은 전통 한가지만으로도 서울토박이의 기준 요건을
충족시키고 있다.
서울시는 서울토박이의 기준을 "선조가 1910년이전 한성부에 정착한 이후
지금까지 서울 행정구역내에서 계속 거주하고있는 시민"으로 규정했다.
이 음식점은 생긴지 90년을 육박한다. 그러니까 1905년 내지 1906년쯤
탄생된 셈이다.
더욱이 설렁탕 자체가 몇 안되는 서울토박이 음식중의 하나이다.
설렁탕의 유래에 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서울토박이 음식인 것
만은 확실하다는게 학자들의 일치된 견해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음식점을 드나드는 단골손님 가운데 서울토박이가 수
없이 많다는 점이다.
집주인인 유원석 할머니(75)는 이곳에서 설렁탕 장사를 처음 시작한 시기
를 50년대 후반쯤으로 기억한다.
"당시 이름은 모르지만 양모씨라는 분으로부터 이 음식점을 인수했는데
주방장이 설렁탕을 잘 만들기로 유명한 90대 노인이었지요" 유씨는 항상
모시적삼만 입고있던 이 노인으로부터 설렁탕을 만드는 기법을전수받았다고
한다. 이문이라는 이름은 옛날 이곳에 이문이라는 석문이 있었던데서 유래
했다는게 그녀의 설명이다.
이 할머니는 황해도 해주태생으로 39년에 이화전문을 나온 당시로서는
엘리트 여성이었다. 그녀는 학창시절 단짝이었던 이원숙씨(지휘자 정명훈씨
의 어머니)를 1-4후퇴때 부산에서 만난게 인연이되어 장사를 하게 됐다.
"50년대에 경기 휘문 양정고등 주변학교에 다니던 학생들이 당시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이곳을 자주 찾아왔지요. 그들이 지금은 백발이 되어 당시의
설렁탕 맛을 기억한채 40여년동안 이 집을 찾는셈이죠"
좋은 재료로 오래동안 정성껏 끓이는게 설렁탕의 맛을 내는 비결이라고
밝힌 그녀는 이집 고유의 설렁탕 맛을 못잊는 서울토박이 단골만도 수백명
에 이른다고 자랑한다.
작고하신 이시형 박사를 비롯,손기정옹등 유명인사들도 수십명에 달한다.
60여년째 단골손님이라는 호근창 할아버지(99)는 이 설렁탕집에서의 점심
식사가 하루중 가장 중요한 일과로 꼽힌다.
"과천 집에서 파고다공원을 들러 설렁탕을 먹고 집으로 가는데 8시간걸려.
다 설렁탕을 먹기위한 수고지"
호할아버지는 몇년전 돈이 없어 발길을 끊었으나 집주인이 공짜로
주겠다고 호의를 베풀어 요즘은 웃음띤 얼굴로 매일 들린다고 한 종업원은
귀뜸해준다.
13대째 서울에 살았다는 윤준식씨(71)는 6살때부터 할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이 곳을 찾아온 단골손님.
"1930년쯤 보신각앞에 땔감 장사꾼들이 많이 모였는데 그들이 항상 설렁탕
을 먹으로 이곳에 왔지. 나도 할아버지를 따라 온 기억이 생생해"
도봉구에서 약국을 경영하고있는 윤할아버지는 설렁탕을 먹으로 매일 이
곳에 오는 열성파중의 하나다.
이문설렁탕집에서 이른 살은 청춘이다. 단골손님들의 상당수가 70대 후반
에서 80대에 이르는 분들이기 때문이다.
유할머니를 도와 음식점을 운영하고있는 큰아들 전성근씨(46)는 "서로
모르는 노인들이 마주 앉아 반주를 곁들이며 설렁탕을 먹는 모습을 볼때
마다 서울토박이 노인들의 사는 낙과 정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3일은 서울시가 서울토박이에 대한 기준을 마련하고 해당 시민들로부터
신청을 받기시작한 첫 날 이었다.
이날 서울시내 동사무소와 구청및 본청에는 서울토박이임을 신청하려는
시민들과 이에 관한 문의전화가 홍수를 이뤘다.
서울토박이문제는 그동안 자격요건을 둘러싸고 논란도 많았다. 신청이
마감되는 갑술년 3월쯤에는 어쨌든 이 문제에 대한 매듭이 지어질것 같다.
그러나 서울토박이는 사람뿐만아니라 가게 음식점등의 유형재도 해당될 수
있다.
서울 공평동 화신백화점 뒷편에 위치한 "이문설렁탕"집은 전형적인 서울
토박이 음식점으로 꼽히고있어,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 설렁탕전문 음식점은 전통 한가지만으로도 서울토박이의 기준 요건을
충족시키고 있다.
서울시는 서울토박이의 기준을 "선조가 1910년이전 한성부에 정착한 이후
지금까지 서울 행정구역내에서 계속 거주하고있는 시민"으로 규정했다.
이 음식점은 생긴지 90년을 육박한다. 그러니까 1905년 내지 1906년쯤
탄생된 셈이다.
더욱이 설렁탕 자체가 몇 안되는 서울토박이 음식중의 하나이다.
설렁탕의 유래에 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서울토박이 음식인 것
만은 확실하다는게 학자들의 일치된 견해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음식점을 드나드는 단골손님 가운데 서울토박이가 수
없이 많다는 점이다.
집주인인 유원석 할머니(75)는 이곳에서 설렁탕 장사를 처음 시작한 시기
를 50년대 후반쯤으로 기억한다.
"당시 이름은 모르지만 양모씨라는 분으로부터 이 음식점을 인수했는데
주방장이 설렁탕을 잘 만들기로 유명한 90대 노인이었지요" 유씨는 항상
모시적삼만 입고있던 이 노인으로부터 설렁탕을 만드는 기법을전수받았다고
한다. 이문이라는 이름은 옛날 이곳에 이문이라는 석문이 있었던데서 유래
했다는게 그녀의 설명이다.
이 할머니는 황해도 해주태생으로 39년에 이화전문을 나온 당시로서는
엘리트 여성이었다. 그녀는 학창시절 단짝이었던 이원숙씨(지휘자 정명훈씨
의 어머니)를 1-4후퇴때 부산에서 만난게 인연이되어 장사를 하게 됐다.
"50년대에 경기 휘문 양정고등 주변학교에 다니던 학생들이 당시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이곳을 자주 찾아왔지요. 그들이 지금은 백발이 되어 당시의
설렁탕 맛을 기억한채 40여년동안 이 집을 찾는셈이죠"
좋은 재료로 오래동안 정성껏 끓이는게 설렁탕의 맛을 내는 비결이라고
밝힌 그녀는 이집 고유의 설렁탕 맛을 못잊는 서울토박이 단골만도 수백명
에 이른다고 자랑한다.
작고하신 이시형 박사를 비롯,손기정옹등 유명인사들도 수십명에 달한다.
60여년째 단골손님이라는 호근창 할아버지(99)는 이 설렁탕집에서의 점심
식사가 하루중 가장 중요한 일과로 꼽힌다.
"과천 집에서 파고다공원을 들러 설렁탕을 먹고 집으로 가는데 8시간걸려.
다 설렁탕을 먹기위한 수고지"
호할아버지는 몇년전 돈이 없어 발길을 끊었으나 집주인이 공짜로
주겠다고 호의를 베풀어 요즘은 웃음띤 얼굴로 매일 들린다고 한 종업원은
귀뜸해준다.
13대째 서울에 살았다는 윤준식씨(71)는 6살때부터 할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이 곳을 찾아온 단골손님.
"1930년쯤 보신각앞에 땔감 장사꾼들이 많이 모였는데 그들이 항상 설렁탕
을 먹으로 이곳에 왔지. 나도 할아버지를 따라 온 기억이 생생해"
도봉구에서 약국을 경영하고있는 윤할아버지는 설렁탕을 먹으로 매일 이
곳에 오는 열성파중의 하나다.
이문설렁탕집에서 이른 살은 청춘이다. 단골손님들의 상당수가 70대 후반
에서 80대에 이르는 분들이기 때문이다.
유할머니를 도와 음식점을 운영하고있는 큰아들 전성근씨(46)는 "서로
모르는 노인들이 마주 앉아 반주를 곁들이며 설렁탕을 먹는 모습을 볼때
마다 서울토박이 노인들의 사는 낙과 정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느껴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