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정보부요원들은 나를 널찍한 빈방으로 데려가더니 창가에 있는 책상에
앉게했다.

지프 앞자리에 앉았던 취조관이 나와 마주앉더니 다짜고짜 사직서를
쓰라고 했다.

나는 할말도 없고해서 볼펜을 꺼내들고 흰종이에 "일신상의 사정에 의해
사직코자한다"고 썼다.

사직서를 받아 봉투에 넣고는 조서를 꾸민다며 신문을 시작했다.

"박부장이 박창래기자에게 대정부 건의안을 건네주었다고 들었소.
몇날몇시에 어디서 무엇을 어떤방법으로 주었는지 상세히
말해주시오" 취조관은 처음엔 점잖게 물었다.

나는 "박기자에게 아무것도 준 일은 없으나 정부건의안이 신문기사화
된것은 부장으로서 내가 책임질 일이니 한국은행을 사직하겠다"고 말했다.
또 그 이상의 벌을 주어도 받을 각오가 돼있으니 내가 모든 책임을 지도록
해주고 이사건을 매듭짓도록 부탁한다고 했다.

취조관은 "나는 중앙은행 조사부장이라 대우를 해주고 싶어서 이방으로
왔는데 이러면 안됩니다. 이사건은 박대통령이 우리 부장(김형욱당시부장)
을 청와대로 불러 어째서 이 기사가 신문에 나가게 된것인지 철저히 조사
하라는 엄명을 내려 조사를 시작한 것입니다"라며 엄포를 놓았다.

그러고 나선 "박부장이 이 기사를 준일이 없다면 누가 주었는지라도
알고있을 것 아니오"라고 엄한 어조로 물었다.

그때서야 이사건의 심각성을 깨닫고 나혼자 책임진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나는 서장관에게 브리핑이 끝난후 박기자가 찾아와서 숫자를 들먹이며
확인하려할때 부인하고 곧바로 홍완모이사방으로 가서 대책강구를
건의했으며,홍이사가 기사화를 막으려고 노력했다는 것도 털어놓았다.

듣고있던 취조관은 그렇다면 대정부건의안 작성에 관여한 직원들의 이름을
나를 정점으로 도표에 그려보라고 했다. 그리고 정부건의안작성시의 역할도
이름밑에 적어달라고 했다.

나는 안상국과장이 그일을 맡아서했고 그밑에 박승조사역이 원고를
작성했으며 브리핑을 하기위해 그 원고를 OHP 필름에 옮겨 나의 브리핑을
도운 사람은 성준경행원이었다고 적어주었다.

그리고 보안을 잘못해서 여러분에게 누를 끼쳐 죄송하나 나라경제를
걱정해서 한 일이므로 우리들의 애국충정도 이해해주기 바란다고도 했다.

그로부터 한시간후에 안상국 박승 성준경씨등 세사람이 내방으로 연행되어
왔다. 심하지는 않았으나 약간의 곤욕을 치르고 한사람씩 다른방으로
옮겨갔다.

내가 박기자한테 그 기사를 준것이 아니라는것이 확실해지자 취조관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조금씩 나아졌다. 저녁으로 곰탕이 나왔고 담배도
한갑주며 피우라고 했다. 밤이되자 박기자는 피신을 했다는것과 그 기사는
원고와 OHP필름중 하나가 유출된 것 같으나 두사람이 다 부인하고 있어
수사에 어려움이 있다는 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마음속깊이 간직해오던 소원이 천신만고끝에 성취되어
중앙은행 조사부장이 되기는 했으나 3개월도 못하고 물러나게 되었을
뿐만아니라 42년1월7일 조선은행에 입행이후 나의 평생직장으로 여겼던
한국은행을 떠나야 한다는 아픔에 뜬눈으로 의자에 기대어 밤을 세웠다.

3월9일 오후엔 홍이사와 이국열이사도 조사를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무슨까닭인지 알려주지 않았지만 이사건이 확대되어 가는 느낌이 들어
불안한 가슴을 안고 깊은 시름에 잠긴채 또한 밤을 지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