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라는 것은 외곬으로 뻣뻣하게만 나간다고 해서 되는게 아니오.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서 적절하게 대응을 하는 슬기가 있어야 된다 그거요.

우리의 거사는 이미 목표를 달성했다고 할수 있어요. 왕정복고를 이루어
유신정부가 출범하지 않았소. 그러니까 이제는 새로 출범한 정부를 잘 운영
해서 정권을 공고히 해나가는 게 당면 과제요.

그 과제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는 강경한 방법과 온건한 방법을 그때그때
적절히 사용해야 된다 그거요. 그게 정치요. 정치는 혁명과는 달라요. 혁명
은 강경일변도로 나가야 성공할 수가 있지만,정치는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아야 돼요"

"이와쿠라도노께서는 혁명은 이미 끝났고,지금은 정치의 단계로 들어섰다
그 말씀인데,과연 그럴까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아직 혁명이
끝나지 않았다 그겁니다.

당장 오늘 요시노부가 우리 유신정권을 무너뜨리려고 군사를 출진 시키지
않았습니까. 그런데도 혁명은 성공하고, 정치의 단계로 들어섰다고 할 수
있을까요?

우리의 혁명은 요시노부를 깨끗이 몰아내고,막부 세력의 뿌리를 송두리째
뽑아버렸을때 비로소 성공했다고 마음을 놓을 수가 있는 겁니다. 그 다음이
국가를 개조해 나가는 정치단계가 되는 거죠.

그러니까 지금은 혁명의 본격적인 단계라고 해야 옳은 겁니다"

사이고의 목소리도 어느덧 열기를 띠고 있었다. 맞장구를 치듯 오쿠보가
뒤를 이었다.

"나도 사이고공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감이라구요. 요시노부가 이미 선전을
포고했어요. 애당초 우리가 원하는대로 됐지 뭡니까. 이제는 싸워서 박살을
내는 길이 있을 뿐입니다"

두 사람이 정면으로 맞서자 이와쿠라는 꽤나 곤혹스러운 듯 이맛살을
찌푸리며 살짝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러다가 눈을 들어 두 사람을 번갈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싸워서 이긴다는 보장도 없지 않소. 도리어 우리가 패할 가능성이 많아요.
숫적으로 우리가 월등히 열세라는 걸 아실텐데.. 듣건대 요시노부 쪽은
일만오천 군사라고 하오. 우리는 그 절반도 잘 안되는 형편인데,이길 수
있을 것 같소?

승산이 없는 전쟁에 섣불리 뛰어들다니 어리석어요. 그래서 마지막으로
요시노부를 한 번 설득해 보기로 했지 뭐요. 내일 사신을 오사카로 보낼까
하오. 그러니까 그 결과를 기다려본 다음에."

"안됩니다. 어리석은 생각이에요. 설령 요시노부가 진격 중지 명령을
내린다 하더라도 이미 출진을 한 군사들이 순순히 도로 오사카로 되돌아
갈 것 같아요? 어림도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