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윈스턴 처어칠처럼 여러가지 방면에 재주가 있었던 인물도 드물
다. 정치가로서 성공한 것은 물론 종군기자 군인 역사가 운동선수 수채화
가 연설가 행정관 저널리스트 벽돌공 등거의 해보지 않은 일이 없었기 때문
이다. 그것은 그의 타고난 재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도 할 수 있지만
일생동안 무슨일이든지 다 해보려고 노력한 결과라고 해야할 것 같다.

그는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단 5분동안도 가만히 있은 적이 없었다는
사실에서 그의 재능이 발휘된 것임을 확인하게 된다.

문화체육부가 ''12월 문화인물''로 선정한 개화기의 선구자 윤백남
(1888~1954) 또한 다재다능했다. 금융인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그가
교육자 연극인 출판인 소설가 희곡작가 언론인 영화인 방송인 동화구연가
군인 등 다채로운 경력을 갖고 있으니 말이다.

도쿄고등상업학교를 졸업한 뒤 한성수형조합에 근무하면서 보성전문학교
강사로 출강한다. 경술국치 이후에는 매일신보기자 및 편집국장등으로 있
으면서 문필활동을 하는 한편으로 신파극단인 문수성과 예성좌의 창단 ,
신극단체인 민중극장과 경성소극장 극예술연구회 등의 조직으로 연극활동을
하는가하면 프로덕션을 두차례나 만들어 제작 각색 감독을 맡아 영화인으로
서도 활발한 활동을 벌인다. 그밖에도 월간잡지 ''예원''과 ''야담''을 발간하
고 경성방송국 초대조선어과장과 김해 합성학교 교장을 지내기도 한다.
해방이후에는 해군중령으로 6.25전쟁에 참전하고 서라벌예대 초대학장과
교수 및 예술원회원을 지낸다.

그의 많은 족적들 가운데세도 몇가지 두드러진 것들이 있다. 하나는 한국
최조의 대중소설 ''대도전''(1919)을 신문에 연재한 것이다. 도둑의 이야기
지만 혼란한 사회현실에서의 집단적 폭력을 묘사하면서 경향소설적인 면모
를 보여준다. 다른하나는 신극사 최조의 연극론인 ''연극과 사회''를 발표한
것이다. G 크레이그의 ''극예술론''에 바탕을 두고 우리의 관점에서 쓴 것으
로 소박한 논조이기는 하나 당시 연극계에 큰충격을 안겨 준 논문이다.
마지막으로는 최초의 극영화인 ''월하의 맹서''의 각본을 쓰고 감독을 맡았던
일이다.

개화기의 만능문화예술인 윤백남이 남긴 업적을 기리는 12월 한달동안의
행사에 다같이 동참하여 그를 되새겨 보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