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우라바의 최우상문사장(45)은 정인영 한라그룹회장을 기업인으로서 가장
존경한다. 일에 전념하는 그의 기업가정신이 좋아서란다.

실리콘고무로 전자계산기부품및 자동차부품을 생산하는 최사장은 가장
존경하는 기업인이 경영하는 한라그룹에 자사제품을 납품하는 것이 소원
중의 소원이다.

한라공조와 만도기계에 세라믹고무호스와 쇼크업소버패킹을 공급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납품권을 따는 일이 얼마나 험하고 먼길인지를 그는 익히
알고 있다. 기아자동차로부터 엔진부품 납품권을 딸 때도 그랬기 때문이다.

그동안 납품권을 얻으려할 경우 학연 지연등 인맥을 활용했으나 이번에는
그가 평소 존경하는 회장님을 직접 만나 부탁을 드려보기로 마음먹었다.

일개 중소기업사장으로서 대그룹회장을 단독으로 만난다는 자체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지난해 11월 최사장은 정회장에게 보내는 장문의 편지를 썼다. 남해의
조그만 섬에서 태어나 뼈빠지게 일해 첨단고무부품업체를 일으킨 내력과
평소 존경하는 회장님을 직접 만나뵙고 싶다는 내용을 담았다.

때마침 정회장이 신병치료차 중국 북경의 장성호텔에 머물고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곳으로 샘플 카탈로그등을 동봉해 부쳤다. 한달 뒤 드디어 면담을
허락하는 전갈이 왔다. 최사장은 이 연락을 받고 "북경이 아니라 북극
이라도 찾아나설 참이었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었다.

12월20일 오후6시,최사장은 장성호텔에 도착했다. 정회장을 만나기에 앞서
비서실장과 사전면담을 했다. 많은 시간을 뺏지말라는 당부를 받았다. 호텔
방에 들어서자 정회장은 친절히 앉으라고 했다. 인사를 하자 정회장이 먼저
말을 건넸다.
"중국에는 이번이 처음입니까"
"아닙니다. 회장님,저는 89년부터 중국을 드나들기 시작해 이번이 9번째
입니다. 단체로나 관광으로 온적은 단한번도 없고 혼자서 샘플을 가방에
넣고 다니며 관련업계 사장들과 사귀어 현재 광주에 있는 S화학등에
고무부품인 오링을 연간 8억개씩 수출하고 있습니다"

평소 업계에서 "돈키호테"로 잘 알려진 그는 동료기업인들로부터 정회장
앞에서는 결코 큰소리를 치거나 자랑하지 말라는 충고를 몇번이나
들었음에도 그는 벌써 자랑하기 시작했다. 투박한 인상의 그가 꾸밈없이
털어 놓는 얘기가 재미있었던지 정회장은 예정된 30분의 시간을 훨씬 넘겨
저녁식사까지 함께하자고 했다. 호텔식당에서 볶음밥을 함께 먹으며
중소기업자로서 고생한 사연을 비롯 한국기업의 중국진출환경등을 솔직하게
얘기했다. 얘기도중 정회장은 2번이나 찻잔을 들어 부딪치며 "호붕우"를
외쳤다.

바로 이때다 싶어 최사장은 한라공조와 만도기계에 납품하고 싶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정회장은 쾌히 승낙하며 옆에 있던 관계직원들에게
덕우라바의 부품을 쓰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최사장은 북경에서
거래업자들과 2일간 상담을 더벌인 뒤 귀국했다.

귀국을 한뒤 그는 막연한 불안감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납품권이란 계약
을 맺은 단계에까지 가서도 무산되고 말기 일쑤여서다. 수없이 당했기 때문
이기도 하다. 최근에도 A사에서 구매부장이 직접 공장을 방문,주문서에
서명해 오일분사호스를 발주해놓고도 납품을 받지 않고있다.

그는 이의 납품을 위해 2억원의 설비투자를 하고 관계차량까지 월부로
구입했으나 납품처가 바뀌고 말았다.

최사장은 "너무나 억울해 피토할 지경"이라며 "공정거래위에 고발하고
싶어도 보복이 두려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힌다.
지난해 D전자에 납품하고 받은 어음 1억6천만원이 부도가나 한푼도
못건졌을때보다 이번이 더 억울해 못살 지경이라고 토로한다.

최사장이 북경을 다녀온 2주일후 한라공조와 만도기계의 담당부장들이
동두천에 있는 덕우라바공장을 찾아와 관련품목을 공급해줄 것을 요청했다.
설비투자도 끝내고 제품신뢰성 검사에도 합격했다.

그러나 그후 몇달이 지나도록 한라측에서 공정감사를 하러 오지 않고있다.
"내일은 연락이 오겠지"하며 기다리는 최사장은 하루하루가 초조하기만
하다. 서서히 절망감에 사로잡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