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쿠보는 속으로 당황하고 있었다. "열번회의"라는 용어를 그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서 사용한게 잘못이었구나 싶었다. 그러나 그 용어를 썼다고
해서 속임수라는 말은 지나치며,모욕적이기도 했다. 그래서 머리 회전이
빠른 그는 시치미를 뚝 떼고 반박을 하기 시작했다.

"속임수라니,듣기가 매우 거북하군요. 무엇 때문에 서양사람들에게 속임수
를 쓸 필요가 있습니까. 열번회의라는 말을 그렇게 협의로만 생각할게
아니에요. 한 번을 두고 열번이라는 말을 쓸 수는 없지만,두 번 이상이면 열
번이라고 할 수 있어요. 열번이란 여러 번이라는 뜻이니까요. 다섯 번이
모여서 회의를 했다면 충분히 열번회의라고 할수 있다고 봐요. 모든 번을
통틀어서 말할 때는 열번이라기보다 전번이나 총번이라는 말이 더 적절할
거예요. 나는 그저 여러 번이라는 뜻으로 사용한 것에 불과해요"

"허허허."
마쓰다이라는 점잖게 웃었다. 궤변을 늘어놓는군,싶었던 것이다.

그러자 여기저기 중신들 중에서도 웃음소리가 일어났다. 오쿠보는 절로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어쩌지 못했다.

이번에는 야마노우치요도가 입을 열었다.

"용어를 가지고 그렇게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을 게 뭐 있소. 솔직하게
지난번은 열번회의가 아니었지만,앞으로는 제대로 된 열번회의를 구성해야
겠다고 말하면 되지 않소. 문안에도 그런 말이 나오던데요. 두 번째던가.
앞으로의 정치는 내외의 일 전반을 열번회의에서 논의한다고.그러니까
하루속히 열번회의를 소집해서 일을 처리해 나가야 돼요. 막부도 하나의 큰
번으로 취급해서 참가를 시키는 거예요. 이미 왕정복고가 이루어져 정이
대장군 직이 폐지됐으니까,요시노부를 한 사람의 번주로 생각하고서
말이에요. 그러면 모든 일이 다 잘 해결될 게 아니겠소"
그러자 이와쿠라가 냉랭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요시노부에 관한 문제는 이미 어명이 내려진 터인데,여기서 새삼스럽게
논한다는 것은 어명을 거역하는 행위가 되오. 어명대로 사관납지의
완전무결한 이행을 촉구하는 길이 있을 뿐이오. 만약 그가 어명에 순순히
따르면 충성심을 인정해서 그때 가서 그의 신정권참여 문제를 다시
논의하기로 결정을 보았잖소"

그말을 받아 사이고가 마치 결론을 유도하듯 입을 열었다.

"오늘은 요시노부에게 사관납지의 이행을 강력히 독촉하는 일을 결의하는
것으로 회의를 끝내는 게 어떻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