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한 연구원들이 목소리를 높여 지적하는 연구기관의 문제중 하나가
각 연구기관별로 특성화된 원천연구가 없다는 것이다. 기업연구소와 뭐가
다르냐는 비판이다. 기관별 장기 대형프로젝트도 없고 개인 연구원이
수년간 지속할 연구과제를 갖는다는 것은 더욱 힘들다는 지적이다.
개별프로젝트의 경우 대부분이 1년짜리이고 길어야 3년정도에서 끝내도록
연구비가 책정되는 까닭이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출신의 이모교수(S대화공과)의 경우도 그랬다.
그는 지난 89년부터 91년까지 3년간 2차고분자 전지를 만드는 "고분자
전해질 개발"이라는 과제를 수행했다. 이 과제는 경박단소형이며 내수성
내충격성등의 특성으로 전기자동차에 쓸수있는 축전지를 개발하는데
필수적인 연구이다.

이 프로젝트는 단지 3년을 수행하고 끝나버렸다. 결과는 실용화에
접근시키기에 한참 먼 상태로 가능성만 밝힌 실험실 수준에서 끝났다.
이후 그는 지금의 대학으로 옮겨 왔고 여기에서 이를 계속할 생각이다.

"대부분의 프로젝트를 3년정도의 연구로 마감토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기초성격의 연구에서는 때로 더 장기간의 연구시간이 필요하지요. 물론
엄정한 평가가 전제 돼야겠지요"아직도 아쉬움이 남아있는 이교수의
술회이다. 연구에 집중성을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지적이다.

KIST에는 처음 들어온 개개 연구원들이 전문성을 유지하고 기초연구를
계속하도록 하기 위한 시드 머니(종자돈)제도가 있다. 그러나 이 제도는
때로 유명무실해지거나 변칙적으로 운용되기도 한다. 이 돈을 모아 큰
덩어리로 다른사람들에게 주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러한 제도는 원래
취지대로 운영되는 것이 젊은 연구원들에게 동기부여가 되는 길이라고
이직한 연구원들은 강조한다.

적은 돈이라도 지속적으로 전문성을 찾는 연구에 지원돼야 하며 현재와
같은 프로젝트중심의 연구체제에서 기본적인 연구를 할수없는 연구원들의
불안감을 덜어주는 정책적인 배려가 요구된다는 얘기다.

KIST에서 연세대로 옮긴 최두진교수(세라믹공학과)는 최근
김은영KIST원장이 추진중인 KIST2000프로그램과 같은 연구기관 차원의
대형프로젝트에 상당한 기대가 모아진다고 말한다. 이는 박사연구원
개별프로젝트 중심으로 돼있는 연구방향에서 프로젝트를 따기 위해 걸리는
시간적 소모를 크게 줄일 수있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같은
대기업위주의 경제구조에서는 큰 과제가 산업자체에도 도움을 줄 수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최교수는 연구 활성화를 위해 박사연구원이 대형과제와 중소형과제를
절반정도씩 병행하는 것이 소망스럽다고 제안한다. 중소기업진흥과제나
기초연구등은 개별 연구원이 수행하도록 유도하고 국가적인 과제등은
연구원장을 중심으로 연구소전체가 나서는 연구방향이 좋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KIST2000프로그램은 앞으로 과기처장관이 바뀔때 보면 성공여부를
알수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과기처도 뒤늦게나마 출연연구기관의 차별화 특성화정책을 구상중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어 전문성을 찾는 연구가 보다 활성화되지 않을까
기대를 모으고 있다.

<윤진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