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장관들이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장관뿐만 아니라 과천의 고급
관리들은 다 그렇다. 장관들은 취임초기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홍재형 재무부장관이 취임초기 몇달동안 감기를 달고 다닌것도 스트레스와
무관치 않다. 그러나 "한 6개월지나니까 좀 익숙해 지더라"는 모장관의
말처럼 스트레스를 느낄 시기는 벌써 지나갔는데도 요즘들어 스트레스가
부쩍 늘어난것 같다는게 장관실마다의 공통된 얘기다. 이유는 되는 것
없어서다.

신이라는 접두어까지 붙여 경제를 이끌려고 했지만 정책의 효과는 감감
무소식인게 사실이다. 국민들로부터 성적표를 받아야할 연말이 다가
오는데도 경제는 나아지기보다는 오히려 꼬여들어가는 느낌마저 든다.
경기는 살아날 기색조차 보이지 않는데 물가는 벌써 연말 억제선을
넘어섰으니 말이다.

그래서 여당의원들까지 정책기조를 바꿔야 한다며 몰아붙이기 일쑤이니
장관들의 심기가 편할리 없다. 경제가 안좋으면 으레 정치권이 들고
일어나게 마련이지만 요즘은 "들고 일어나는"모양이 예삿일 같지않다. 5일
민자당 정세분석위원회가 "정부정책이 혼선을 빚고있어 국민불신감이
고조되고 있다"며 공기업경영혁신책과 업종전문화방안을 대표적인 예로
강도높게 비판한데서 이런 움직임을 읽을 수 있다.

지난달 28일 민자당 정책위가 김영삼 대통령에게 보고한 중장기 경제종합
대책도 장관들에겐 큰 짐으로 작용하고 있다.

민자당측의 보고서가 그동안 경제장관들이 "절대불가"라고 하던 내용들을
담고있어 스트레스를 더해줄만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세율인하와 국채발행
문제다. 내년 상반기의 세수실적이 나온뒤에 세율인하폭을 결정하자는게
경제팀의 입장인 걸 뻔히 알면서도 실명제에 따른 세금부담을 빗대어
세율을 인하하라는 저의가 무엇인지 궁금할 뿐이다. 국채발행등 적자재정
문제 역시 당측과 논란을 끝내놓은 테마인데 또 왜 거론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경제장관들이나 고위관리들은 보고내용협의는 하지 않더라도 대통령에게
보고한다는 사실조차 사전에 알리지 않아 고개를 갸우뚱 거리고있다.

"장관들은 청와대의 박재윤경제수석이 민자당측과 이미 사전교감을 한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감추지 않고있다"(기획원관계자)또 대통령이
보고내용에 대해 "일리가 있다"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지기까지해
장관들을 긴장시키고있다.

경제부처 장관의 입장에서 보면 "우군"일줄만 알았던 민자당까지 "감놔라
콩놔라"하며 높은 분에게 건의라는 형식을 빌려 "고자질"을 하니 참으로
딱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중에서도 이경식부 총리의 고민은 이만저만이
아니라는게 측근의 얘기다. 이부총리가 워낙 낙관적인 성격이라서 겉으로
나타내지 않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사실 이부총리는 취임초기부터 피곤한 일이 많았다. 관직을 오래 떠나있다
보니 과연 관료조직을 잘 이끌어 갈수 있을까하는 우려도 적지 않았다.
박수석에게 주도권을 뺏겨 경제팀을 장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도
있었다. 금융실명제 실시 주역으로서 한때 권위를 되찾았으나 현재의 경제
상황이 그의 입지를 또 어렵게 만들고 스트레스를 받게 하고 있는 것이다.
3일 열린 물가대책장관회의의 내용이 그렇다. 정책이 왔다갔다 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지만 스태그플레이션 조짐하에서 뭐 뾰족한 대책이
있겠느냐는 것이다.

홍재형 재무부장관도 잘나가는가 싶더니 최근의 금융단체장 인사와 관련,
위의 감을 못잡아 뭔가 찝찝해 하는 상황이다. 앞으로 금융관련 단체장은
상근도 좋고 비상근도 좋다며 업계 자율을 천명하자 청와대가 비상근제를
부인,그를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김철수 상공자원부장관은 "그레그 전주한미대사말마따나 매사추세츠
신사인게 분명하나 그말을 뒤집어 보면 박력이 없다"(상공자원부국장)는
부하들의 평가로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다.

또 최근 입각한 정재석교통부장관의 존재도 이들 3부장관의 골치를
지끈거리게한다. 정장관이 장관서열과는 관계없이 좌중을 리드하지만
대선배에게 브레이크를 걸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부총리를 비롯한 경제장관들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증거는 또 있다.
이부총리는 살이 찌는 반면 일부장관들은 체중이 줄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살이 찌는데 김철수장관과 여성장관들은 마르는
모양"이라고 한 이부총리의 "스트레스와 체질론"으로 미루어 보면 경제부처
장관들은 스트레스를,그것도 엄청나게 받고 있는게 분명해 보인다.

연말이 가까워 오면서 장관들을 더욱 곤혹스럽게 하는 것도 있다.
개각설이다. 김대통령은 장관을 자주 바꾸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도
직업정치인인 이상 경제가 안좋으면 별수 없지 않겠느냐는게 과천 관가
주변의 얘기다. 이런 소문이 떠돌때면 항상 "과천사람들"은 장관의
통제밖으로 나가려는 속성이 있다. 장관들이 리더십을 발휘하기 어렵게
돼가고 있다는 얘기다. 이래저래 경제장관들의 스트레스는 더 심해가는
느낌이다.

<박영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