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불교의 4대명산중의 하나가 안휘성에 있는 구화산이다. 이 구화산의
중심사찰인 화성사를 개창한 스님이 신라 35대 경덕왕의 가까운 친족인
김교각(696~794)이라 한다.

그는 24세되던 719년에 선청이라는 흰개 한마리를 데리고 당나라에 들어가
75년간이나 구화산에서 전법하다가 99세로 입적하였다. 우리측에는 기록이
없어서 생소한 인물이지만 현재도 중국에서의 명성은 대단하다.

그가 입적한지 1,200년만에 구화산의 육신보전주지인 석성부스님과 안휘성
정부의 허국창단장등 일행이 한중문화예술교류협회(회장 조영록동대교수)
의 초청으로 내한하여 22일에는 서울에서, 그리고 23일에는 김교각스님의
고향인 경주에서 그에 대한 세미나를 가졌다.

그의 일대기인 "성승 지장왕"이 한중합작으로 영화화된다는 북경발
보도등으로 미루어볼때 지장스님이 재조명되고 있는 모양이라 반가운
일이다.

"송고승전"에 의하면 김교각스님은 7척장신인데다 정수리뼈가 우뚝 솟아
기괴한 몰골이며 힘이 장사라서 장정 10명(또는 100명이라고도 한다)이
당해낼수 없었다 한다. 그는 뼈를 깎는 고행으로 식량이 모자라면 백토를
캐어 쌀과 섞어 끓여 먹기도 하고 때로는 국수도 만들어 먹으면서 지냈다.
산아래 사람들이 고행승의 명성을 듣고 가람을 지어드린 것이 바로 화성사
라 한다.

"송고승전"등에 의하면 교각스님이열반에드실때산이 울고 돌이 움직이며
뭇 새들이 슬피 울었다고 하고 화성사에 있는 대종은 쳐도 소리가 나지
않더니 끝내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한다. 제자들은 유언에 따라 유해를
독안에 넣고 3년뒤 뚜껑을 열어보았더니 결가부좌를 한채,안색은 마치
살아있는듯 하고 피부는 유연하며 뼈마디에서는 금자물쇠 흔드는 소리가
나고 향내가 피어올라 사람들이 김교각스님이야말로 육도중생을
제도하기위해 중생의 몸으로 나타나신 지장보살이라고 생각했다 한다.

당대의 유명한 시인 이백은 "지장보살 찬"에서 "보살님 대자대비의 힘/끝
없는 고해에서 구해줄수 있나니/홀로 오래고 오랜 겁을 지내며/고해를 소통
시켜/중생을 구해주는데/이 모든 것은/지장보살의 덕성이어라"고 기렸었다.

국내에서도 지장법사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