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는 듯 쓰지쇼소가 황급히 들어섰다.
쓰지는 게이슈번의 대표적인 지사로 이번 거사를 모의한 십이인 중의 한
사람이었다. 참여로 임명되어 회의에 참석하고 있는 중이었다.

쓰지는 자기네 번주인 아사노가 야마노우치와 얘기를 나누고 있는 것을
보자,주춤 멈추어 서서 좀 망설이는 듯하다가 번주 곁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대감어른,여쭐 말씀이 있습니다" "무슨 일인데?" "저."
좀 주저되는 듯 쓰지가 힐끗 야마노우치의 눈치를 보며 어물어물
하자,아사노는 재촉을 하듯 말했다.

"괜찮다구,회의에 관한 일이라면 서습없이 말하라구" "예,말씀
드리겠습니다. 지금 사이고다카모리가 저쪽 방에 와 있습니다.
오쿠보도시미치와 나누는 말을 들으니까 심상치가 않습니다" "심상치가
않다.비상수단을 쓰겠다 그거지?" "예" "나도 알고 있어,그러잖아도 우리도
지금 그 얘기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구. 그래,사이고다카모리는 뭐라고
그러던가?" "저.다음 회의에서 일이 잘 안되면 자기가 죽겠다면서 품안에서
단도를 꺼내 보이지 뭡니까. 그러자 오쿠보도 그렇다면 자기도 죽겠다고
역시 단도를 꺼내 보이더라구요"
사이고와 오쿠보,그리고 이와쿠라는 어젯밤 십이인의 마지막 회합이
끝나고 모두 돌아간 다음 세 사람만 남았었는데,그때 유신 단행이 여의치
않을 경우를 위해서 제각기 단도를 품안에 품고 회의에 참석하기로 했었다.

조금전에 이와시다로부터 반대파의 저항이 완강하다는 얘기를 듣고
이와쿠라에게 가서 단도를 품고 왔을게 아니냐고 전하라고 했던 사이고는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가 않아 자기가 직접 회의장인 소어소로 가서
오쿠보를 만났다. 그리고 일부러 다른 사람에게 들리도록 큰 소리로
얘기를 주고받으며 품안에서 단도를 꺼내기까지 했던 것이다. 사전의
협박공갈인 셈이었다.

다음 회의에서 끝내 일이 잘 안될 경우엔 피를 보게 될 것이라는 으스스한
정보는 곧 메이지천황을 제외하고,총재를 비롯한 모든 의정과 참여의 귀에
들어갔다.

반대 의견의 주창자인 야마노우치는 그말을 듣고부터는 마치 별안간
벙어리가 되기라도 한 것처럼 일절 입을 열지 않았다. 그 협박공갈의
표적이 자기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분노와 공포를 무언으로 삭이고 있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