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애써 가라앉힌 이와쿠라는 냉랭한 표정으로 조리정연하게 두
사람의 의견을 깔아뭉개기 시작했다. 먼저 그는 도쿠가와막부가 지난날에
태평성세를 이루었다는 긍정적 평가에 대하여 반론을 가했다.

그것은 무자비한 억압에 의해서 얻어진 껍데기만의 평화였을 뿐,실상은
만백성이 공포에 떨고,고통에 신음한 암흑의 시대였을 뿐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막부는 무엄하게도 천황의 위력까지 짓밟아 허수아비를 만들어놓고,
자기네 마음대로 세상을 주물럭 주물럭 떡 주무르듯이 하지 않았느냐고,
서슴없이 매도했다.

그리고 흑선 도래이후에는 실정을 거듭했을 뿐 아니라,우국지사들에 대한
피의 숙청까지 무수히 단행했으니,어찌 그런 엄청난 죄과를 묵과할 수가
있느냐고,새로운 시대는 마땅히 구시대와의 단절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단호히 결론을 지었다.

이와쿠라의 실랄한 반박이 끝나자,이번에는 오쿠보가 맞장구를 치듯 입을
열었다. 그 역시 차가우리만큼 날카로운 어조로 선언을 하듯 간명하게
말했다.

"이와쿠라공의 주장을 전적으로 지지합니다. 구시대와의 단절을 위해서는
반드시 사관납지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만약 요시노부가 그것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에는 힘으로 그렇게 되도록 하는 길이 있을 뿐입니다"
막부 타도전을 내비치는 말이었다.

마침내 어전회의의 논조는 선명하게 두 갈래로 갈리게 되었다. 막부에
동정적인 야마노우치와 마쓰다이라의 관용론과 구시대와의 단절을 주장하는
이와쿠라와 오쿠보의 전쟁불사론에 대하여 이사람 저사람이 찬반의 의사를
표명하기 시작하자,자연히 격론이 벌어지기도 해서 장내는 열기를 더해
갔다. 대체로 노년층은 전자,즉 온건파 쪽이었고 젊은 층은 후자,곧
강경파 쪽이었다. 입을 꾹 다물고 묵묵히 듣고만 있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의장인 나카야마가 의사 표시를 하지 않고,지그시 두 눈을 감고서 그
열기속에 미륵처럼 앉아있는 비슈번의 번주인 도쿠가와요시가쓰에게
물었다.

"귀공의 의견은 어느 쪽입니까?"

그러자 요시가쓰는 멀뚱히 눈을 뜨더니,

"물으나마나 나는 야마노우치공과 마쓰다이라공 쪽이지요"
하고 대답했다.

역시 초록이 동색이었다. 같은 번주의 몸인지라 생각도 같은 모양이었다.

번주 가운데 두 사람이 아직 의사표시를 안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게이슈
번주인 아사노나가고도에게 물었다. 그 역시 초록이 동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