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를 피로물들였던 루츠코이의 무장폭동은 사태발생 하루만에
수백명의 사상자를 내며 막을 내렸다.

지난21일 의회해산 포고령으로 절정에 치달았던 러시아 보혁투쟁은
보수세력이 극단적 수단에 호소하면서 스스로를 붕괴시켜 약 보름만에
옐친의 완전한 승리로 끝났다.

이번 유혈충돌은 향후 수년간 러시아정치흐름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전망되며 이는 러시아 현대사에 또 하나의 오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보수의회는 지난4월 국민투표이후 돌아올수 없는 다리를 건넜으며 이번
사태로 당분간 재기불능의 상태가 됐다.

적어도 중앙정치 무대에서만큼은 상당기간 옐친의 독주가 예상된다.
그러나 무차별적인 유혈진압이라는 짐을 안게된 개혁파로서는 향후
경제개혁에서 어떻든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한다는 또 다른 부담을
안게됐다.

러시아 헌정체제는 개혁현실과 법현실의 괴리를 폭력으로 해소했지만
새로운 헌정체제의 수립까지는 앞으로 적어도 6개월이상이 소요될
예정이다.

내년6월 대통령선거 실시일까지 러시아 정계는 옐친이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준계엄적 상황이 계속될 것이 확실하다.

옐친대통령은 국회및 대통령 동시선거라는 반대파의 압력을 받아왔었다.
당분간은 국민대화해라는 슬로건을 내걸 것으로 보이며 화합의 수단으로
동시선거라는 카드를 낼 가능성이 크다.

필라토프 대통령 행정실장은 4일 오후 기자회견을 갖고 국회및
지방의회동시선거 실시라는 정치일정을 공개해 주목받고 있다.

지방의회는 그동안 보수파의 근거지였었다. 이를 고려하면 이번
기회에 중앙뿐만 아니라 지역에서도 선거를 통해 보수파를 쓸어내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옐친이 이같은 정치일정을 추진할경우 12월~1월께 국회및 지방의회
선거,내년 1.4분기 헌법채택,6월 대통령 선거라는 수순을 밟게된다.

밀도높은 이같은 정치일정은 경제개혁에는 당분간 큰짐이 될것이
분명하다. 러시아 경제개혁 노선은 인플레와의 전쟁이라고 할만큼
방만한 금융과의 힘든싸움을 벌여왔다.

지난 9월 급진개혁파 가이다르 제1부총리 기용이후 정부는 모든
종류의 특별금융(장기저리)을 전면 폐지하는등 초긴축정책으로
돌아갔으나 정치의 논리에 밀려 다시 후퇴할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유혈사태로 상처받은 국민의 정서를 감안하면 당분간은 "느슨한 개혁"이
될수밖에 없을 것같다.

옐친대통령은 4일 반개혁성향의 14개 단체와 4개언론매체에 대해 활동을
정지시키는 명령을 발동해 정국의 계속적인 장악의사를 천명했다. 또
야간통행금지를 실시,유혈폭력사태의 긴장감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이같은 긴장감을 등에 엎고 옐친대통령은 5일부터 지방정계의
지도자들과 잇단 정치협상을 재개하고 있다. 5일엔 88개 전지역의
행정수반이 참여하는 연방단체평의회를 모스크바에서 개최해 일단 이번
사태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수순을 밟아가고 있다.

연방소속 지역지도자들은 그동안 중앙의 보혁갈등 구조를 틈타
중앙으로부터의 이탈을 시도해 왔었다.

루츠코이,하스불라토프 세력에 대한 옐친의 강경한 대응이 우선 당장은
지역지도자들을 크게 위축시키고 있다. 혈진압이 끝난 4일부터 크렘린에는
거의 전지역으로부터 옐친을 지지한다는 전문이 답지해 사태의 변화,
분위기의 변화를 실감케하고 있다.

러시아 연방의 틀은 20개 자치공화국 49개주 6개지방등 다단계로 구성된
자치정부들로 짜여져 있고 연방(federation)을 국가연합(cenfederation)
으로 전환하려는 꾸준한 움직임을 보여왔다.

러시아 정치혼란은 그동안 중앙의 보혁대결 못지않게 이같은 지역의
이반으로 더욱 혼란스런 모습을 보여온게 사실이다.

보수파의 정치적 유혈사망 사태가 지역의 이탈에도 제동을 걸어줄지는
미지수이지만 적어도 당분간은 일정수준의 구심력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실제적인 비즈니스맨들이나 경제이론가들은 중앙과 지방의
갈등이 자원개발등 경제개혁에 거대한 장애물로 기능한다는점을 비난해
왔었다. 강도높은 중앙집권이거나 아니면 보다 분명한 역할분담이
요망되어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옐친의 중앙집권적 정국장악은 경제에
도움을 줄수있다.

옐친대통령측이 내놓은 헌법초안은 강력한 대통령제를 근간으로
한것이지만 러시아연방구조에 대해서는 아직 분명치 않은 요소들이
많다.

오는 12월 국회의원 선거결과는 옐친의 정치운명과 러시아의 미래를
결정할것이 분명하다. 옐친대통령은 이미 4백명의 국회의원중 1백60명을
정당비례대표로 충원하는 국회구조를 공표해두고 있다.

물론 이는 개혁정당의 다수장악을 목표로 한것이고 어느정도 현실적인
구상이라고 할수있다.

이번 유혈사태는 결과적으로 중도파들의 입지를 약화함으로써 개혁파의
선거캠페인은 더욱 유리한 입지에 선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이번 유혈사태로 막을 내린 보수강경파들이 선거과정에서 어떤
형태건 또다른 폭력적 도전을 해올수 있고 선거라는 특수한 상황이
방만한 경제운용을 부추겨 장래의 짐을 무겁게 할수있음이 우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