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완수 워싱턴특파원 현지보고>

"출혈수출로 일궈논 시장인데 너무 허무하게 무너진다"
"이대로 가다가는 2~3년내 미국에 내다 팔 물건은 씨가 마를거다"
"우리나라 물건을 못팔고 남의나라 물건파는 심정이 오죽하겠느냐"
미국시장에서 점점 사라지는 한국상품을 보면서 현지 종합상사
세일즈맨들이 내뱉는 안타까운 탄식이다.

백화점에 가보면 하루가 다르게 중국 동남아제품들이 늘어나고 있고
고가시장은 일본상품들이 판을 치고 있는데 한국상품을 구경하기는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한국의 수출구조가 노동집약적인 상품위주에서 기술집약적인
상품구조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현상이라고 자위하고 있으나 그렇게 낙관
하기에는 상황이 급박한게 현지 세일즈맨들의 지적이다.

가격경쟁력약화의 가장 큰 원인은 중국이나 동남아보다 높은 임금수준
이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품질이 개선되기는 커녕 오히려 과거보다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신발세일즈를 하고 있는 최재국쌍용차장은 한국제품의 수입가격이
중국보다 10~20% 비싼것은 별로 문제가 되지않는다고 지적하면서 문제는
중국보다 훨씬 높은 불량률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신발이 사양산업으로
구분되면서 말기현상을 보이는지 품질이 엉망이라고 걱정한다. 또 미국
바이어한테 주문을 받아 국내중소기업에 주려고 해도 워낙 부도가 많이
나 안심하고 주문할수 없는 형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직물세일즈를 하고있는 이철의선경차장도 비슷한 견해다. 87~88년
노사분규이후 이직율이 높고 숙련공을 구하기 힘들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4~5년전보다 품질이 떨어지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중국이나 동남아국가들에 비해 그래도 한국산제품의 품질이 더 우수하다는
일반적인 인식과는 다르게 품질저하론이 세일즈현장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같이 품질저하를 얘기하는 것은 비단 종합상사원들 뿐만이
아니다.

볼티모어에서 슈퍼마킷이나 백화점용 비닐포장지를 수입하고 있는 교포
김희석씨(38.글로벌 트레이딩대표)도 비슷한 지적을 하고있다. 그는
얼마전 한국에서 수입한 물건이 백화점납품에 퇴짜를 맞는 바람에 수입선을
중국으로 바꿨다. 한국에 물건을 사러가면 중소기업사장들이 부도를
막느라고 은행만 열심히 쫓아다니지 품질관리에는 신경을 별로 쓰지
않느다는게 그의 지적이다. 중국제품이 미국기업들과 합작으로 미국기계를
사용,만들고 있기 때문에 품질도 오히려 좋다고 설명하고 있다.

미국 일본등과 합작투자한 중국 동남아제품이 선진기술과 저임금을
바탕으로 가격경쟁력은 물론 품질경쟁력에 있어서도 무서운 속도로
쫓아오고 있는 것이다.

저임금의 중국 동남아와 고기술 고품질의 일본사이에서 한국이 어려움을
겪고있으나 현재의 기술수준에서 조금만 더 노력, 품질관리만 제대로
하더라도 미국시장이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는 않는다는게 현지수입계자들의
아쉬움이다.

물론 가격경쟁력에서 도저히 중국이나 동남아를 따라갈수 없는 품목들도
있다. 신발같은 경우 수입단가가 4달러(소매가 10달러내외)짜리 저가품
이나 공해산업으로 분류되는 캠버스운동화등은 한국에서는 임금이 비싸
생산해낼 도리가 없다.

또 노임이 결정적인 경쟁력요소로 작용하는 의류의 경우에도 고급제품이
아니고서는 가격면에서 경쟁이 안된다. 뉴욕에서 의류도매업을 하는
이창훈씨(38)는 "한벌에 15달러내외하는 여자브라우스의 경우 중국에서는
6~7달러에 들여올수 있으나 한국에서는 최소한 10달러는 줘야 들여올 수
있다"고 말하고있다. 그는 한국의류는 이제 미국제품에 비해서도 비싸졌다
고 지적하고 있다. 로스앤젤리스근교 공장의 경우 남미불법이민자들의
임금이 월5백~6백달러로 한국보다는 훨씬 싸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의류
생산업자들이 저임금을 찾아 최근 생산공장을 뉴욕~LA~중국~스리랑카
방글라데시등으로 이동시키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말한다.

한국상품이 이처럼 가격에서 밀리고 품질이 뒷받침되지 않으면서 가장
우려되는 것은 한국상권의 몰락이다. 한번 떠난 바이어와 고객을 다시
잡는데에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일본이 지난 80년대 후반 엔고로 가격경쟁력을 상실했을 당시
동남아등지로 생산기반을 옮기며 미국시장에서의 시장점유율을 유지시킨
것과는 대조가 된다. 일본은 당시 동남아에서 생산한 일본상품을 그대로
미국에 수출, 자기상권을 유지할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현재 점점 줄어드는 한국에서의 수입을 제3국에 진출한
한국기업제품들로 채우지 못하고 미국시장에서 차지하는 한국상품전체비중이
감소,한국상권의 위축현상을 보이고 있다. 중국이나 동남아에서 미국으로
들어오는 제품이 한국상권의 영향하에 있다면 그다지 커다란 문제가 되지
않지만 현재는 미국이나 일본의 상권아래 들어오고 있어 한국상권의 영역이
그만큼 잠식당하고 있는것이다.

이는 나중에 한국기업의 상품개발이나 품질경쟁력이 회복돼 시장을
되찾을 수 있는 여건이 됐을때에도 처음부터 다시 마킷팅을 해야하는
문제가 발생하는등 시장탈환의 걸림돌이 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