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군수산업이 급속한 속도로 민수화 되고있다.

수십년간 외국인의 접근이 철저히 통제되던 군수산업시설은 하나 둘씩
생필품제조에 활용되고있다. 그러나 탱크와 총등 무기를 제조하던 공장이
생필품을 본격적으로 제조하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너무많다. 본사
김영근 기자가 민수전환현장인 이르쿠츠크 소재 라디안공사를 방문,
변화현장을 살펴보았다.

"한국의 손님들에게 정성들여 설명하면 언젠가는 러시아 산업발전에
도움이 되는일이 있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수십년동안 철옹성처럼 닫힌
철문속에서 무기생산에 전념했던 러시아 이르쿠츠키 소재 라디안공사의
바지예프 세르기 수석엔지니어는 기자에게 이례적으로 공장내부를 공개한후
소비재를 생산할 "자본"이 필요하다는 말을 이렇게 꺼낸다.

이 라디안공사는 우리나라 금성사의 TV조립부품을 수입해다가 지난
5월중에 "Gold Star"상표가 붙은 TV 2천대를 생산한 사업장. 라디안공사가
발족한 지난 1925년이후 처음으로 "인민"들의 생활용품을 생산한 진기록을
세운 것이다.

이런 변화는 라디안공사 직원들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아직도 공사의
정문을 들어설때 엄격한 신분확인절차가 계속되고 해당 작업장문은
비밀번호를 눌러야 열리는 2~3중의 군사시설 보안장치속에서 무기가 아닌
생필품을 생산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체제가 힘없이 무너진 후의 경제개혁분위기를 간파한 생산책임자의
포부는 이를 더욱 명료하게 해준다.

"앞으로 화장품과 그릇 컵 전자제품 학용품등을 생산할 것입니다. 이제
구소련 당시의 무기공장기능은 상실했습니다. 무기생산주문을 기다리다가는
공장가동률이 0%로 떨어질 것입니다"

한때 종업원이 5천명에 달했던 라디안공사는 무기생산이 중단된 이후
종업원이 급속히 감소하기 시작, 현재는 2백여명으로 줄었다. 이를
반영하듯 이르쿠츠크종합대학은 라디안공사에서 일자리를 잃은 종업원을
대상으로 긴급 학생모집에 나섰다.

라디안공사 생산책임자는 "일감이 없을때 인력을 키워야 한다"면서
"한국기업을 시발로 미국 네델란드 폴란드의 기업들이 합작형태로
부품조립사업에 진출할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최근까지 미국과 군사력경쟁을 벌였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일시적으로 산업자금을 외국에 의존하지만 독자적인 기술을 갖는날이 멀지
않았다고 밝혔다.

비록 지난 5월부터 군인들의 봉급은 못주고 있으나 이르쿠츠크시 외곽 50km
지점의 탱크부대(1천여대)가 아직도 건재하다는게 그를 떠받혀주는 힘이다.
이런 자부심속에서도 현재의 경제적인 어려움을 숨기려 하지 않는다.

지난해 소비재와 서비스에 대한 소비자물가는 91년보다 평균 26배
증가했다는것. 품목별로는 육류및 소시지 마카로니 밀가루 식물성기름
빵제품등의 가격은 1백~1백25배가 뛰었고 어류 동물성기름 설탕 과자류 차
곡류 대두 통조림등은 1백30~1백60배, TV 냉장고 세탁기 전기다리미 가구
구두 화장비누 세탁비누등은 1백배이상 인상되었다.

이 기간중의 서비스가격의 경우 아동시설의 급식비는 32배, 보건
요양서비스는 20배,일상서비스는 19배, 공영서비스는 12배가 인상되었으며
공산품의 도매가격은 91년말에 비해 평균 34배가 올랐다.

이때문에 "인민"들은 생산시설의 근로자로 남기보다는 매점매석으로
돈벌기를 원하고 시장경제원리의 산물인 자유시장의 상인으로 변신하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루불화의 달러화에 대한 가치하락은 최근의
화폐개혁직전까지 숨가쁘게 변해 외국자본을 불러들이는데 장애요인으로
작용해왔다.

라디안공사의 바지예프 세르기 수석에지니어는 "인플레이션이 심한데다
달러화에 대한 루불화의 가치변화가 커 외국자본의 유입이 어렵다"며
"현재는 경제가 최악의 상태에 빠져있으나 개혁의 틀속에서 점진적인
발전이 있을것"이라고 말했다.

구소련이 무너진이후 러시아 전역은 제품가격의 인상-수요의 감소-생산의
감소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곳곳에서 옛날의 명성을
되찾을려는 욕망이 꿈틀거리고 있다. 문제는 생산시설을 돌릴 자본이
없다는 것이다.

수십년동안 닫혀있던 군사보안시설을 기자에게 팔을 걷어 부치고 공개한
이유는 간단하다. 어느나라 어떤 자금이든지 "인민"들의 생활향상을 위해
들여와야한다는 강박관념때문일 것이다.

<이르쿠츠크(러시아)=김영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