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공사 존 닐이 함대 사령관인 쿠바 제독과 함께 항의차 에도성을
찾아오자, 노중으로 승진한 오가사하라가 양식으로 꾸며져 있는 서양
외교관 응접실에서 그들과 마주앉았다. 그리고 통역을 통해서 회담을
하기 시작했다.

서로 통성명을 마치자, 오가사하라가 선수를 치듯이 말했다.

"오실 줄 알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반갑습니다"
마치 무슨 양국간에 이익이 되는 회담을 개최하는 것처럼 반갑다는 말을
하자, 닐 공사는 좀 어이가 없는 듯 씁쓰레한 웃음을 떠올렸다. 이녀석
봐라, 처음 대하는 녀석인데 단수가 보통 아니로구나 싶었다. 쿠바 제독
역시 그런 눈길로 오가사하라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닐 공사는 곧 얼굴에서 웃음을 싹 지워버리고, 일부러 바짝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우리가 찾아온 목적을 이미 다 알고 계실 터인데, 반갑다니 도대체 무슨
뜻이요?" "왜 찾아오셨는지 알고있고 말고요. 그러나 그 문제에 앞서서,
말로만 듣던 닐 공사를 처음 뵙게 되니 반가울 수밖에요"
반갑다는데 뭐 나쁠게 있느냐는 듯이 오가사하라가 얼굴에 은은한 미소
까지 지어 보이자, 닐 공사는 시작부터 자기가 밀리는 것같아, 좋다.
그러면 나도. 하고 아랫배에 땡땡하게 집어넣었던 긴장된 공기를 슬그머니
조금 뺐다. 그리고 한결 여유있는 어조로 나갔다.

"좋아요. 그런 뜻이라면 나도 귀하를 만나게 되어 반갑다고 해두죠.
그러나 우리는 지금 그런 말을 주고받을 심정이 아니란 걸 모르시오?"
"압니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겠소. 이번에 나마무기에서 우리 영국
상인 한 사람을 일본의 군사가."
닐 공사는 사건의 자초지종을 늘어놓은 다음, "도대체 비무장의 일반인을
그렇게 무참히 살해해도 되는 건가요? 그런 행위는 야만 국가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막부의 견해는 어떤지 말해 보시오" 하고
들이대듯이 말했다.

"야만 국가"라는 말이 나오자, 오가사하라도 슬그머니 표정이 굳어들었다.

"어느 나라나 그나라 나름대로의 법제(법제)가 있는 법이오. 우리 일본에는
기리수데고멘이라는 법제가 있소. 일반 백성이 무사의 말을 듣지 않거나,
불순한 짓을 했을 경우에는 즉석에서 목을 잘라도 죄가 되지 않는 그런 권한
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