칙사인 오하라는 자리에서 일어났으나,히사미쓰는 그대로 가만히
앉아 있었다. 중신들의 시선이 히사미쓰에게로 집중했고,쇼군도
히사미쓰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하라가 접견실에서 나가자,히사미쓰는 입을 열었다.

"사쓰마에서 온 이 시마즈히사미쓰는 먼저 쇼군 도노(전:각하)에게
늦게나마 가스노미야(사궁)공주님과의 화혼(화혼)을 축하 드립니다.
부디 금실이 좋으셔서 백년해로를 하시기 빕니다" "고맙소"

그러나 이에모치는 별로 기분좋은 표정이 아니었다. 사쓰마의 섭정에
불과한 주제에 황실을 움직여서 칙서를 받아내어 막부를 개혁하려고 찾아온
장본인이라는 것을 익히 알고있기 때문이었다.

쇼군 이에모치는 몇 달전에 고메이 천황의 여동생인 가스노미야 공주와
결혼을 했다. 막부의 중신들이 천황을 휘어잡기 위한 술책으로 쇼군과
천황의 여동생과의 결혼을 추진해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막부의 중신들은
그 결혼을 윤허하면 존황양이 쪽으로 정책의 방향을 돌리겠다고 거짓으로
약속을 했고,천황은 그 약속을 믿고 이미 황족과 약혼이 되어있는 여동생을
강제로 약혼을 파기하고,쇼군에게 출가토록 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쇼군과 천황이 처남남매간이 된 터이라 히사미쓰는 그 관계를
은근히 상기시켜서 칙서의 내용에 동의하도록 하려는 속셈으로 먼저 결혼
축하의 말을 꺼낸 것이었다.

"천황폐하께서 소인에게 에도에 가거든 쇼군 도노께 안부를 전해 달라는
말씀이 계셨습니다. 그리고 천황폐하께서는 쇼군 도노께 출가하신 당신의
여동생이 어떻게 지내는지 무척 궁금해 하시면서 소인에게 한 번 만나보고
오라는 분부도 계셨지요"

그것은 거짓말이었다. 히사미쓰는 결혼축하의 말만으로는 미흡할것
같아서 순간적으로 머리에 떠오르는대로 그런 말까지 했던 것이다.
지모(지모)가 보통을 넘고,얼렁뚱땅을 잘하는,다시 말하면 정치가로서
소질이 충분한 사람이었다. 사이고다카모리가 생각했던 것처럼 결코
능력이 의심스러운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알았소"
이에모치는 하얀 이마를 살짝 찌푸리기까지 하며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끝으로 천황폐하께서는 아무쪼록 당신의 당부를 받아들여 주었으면
좋겠다는 말씀도 계셨습니다. 그러니까 쇼군 도노,처남이신 천황폐하를
실망시키는 일이 없도록 해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