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년동안 세종로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철거여부를 놓고 논란이
한창이다. 원래는 정부수립후 중앙청으로 사용되어 행정부의 상징적
건물이었는데 일제식민잔재를 없앤다는 명분으로 1986년이후
국립박물관으로 변경사용되어 오고 있다. 철거를 주장하는 측의 입장을
들어보면 이 건물이 수도서울의 명당자리에 위치하여 건물이 하늘에서
내려다 보면 일본을 상징하는 "일"자로 보이며 우리민족의 "기"을 꺾을
우려가 있기 때문에 철거하거나 다른곳으로 이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극일을 위한 이러한 주장도 감상적으로는 일부 국민의 호응을 받을수 있다
할지라도 다시한번 이성적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주장은
아무리 선의로 생각해도 풍수지리설에 근거한 것으로 오늘의
첨단과학시대에 역행하는 발상에 불과하다. 일제가 건설했다해서 철거해야
한다면 경부선 호남선 중앙선철도 역시 여기서 예외일수는 없다. 극일을
위해서라면 국립중앙박물관 철거이전에 정신적인 면이나 과학기술면에서
일본을 이길수있는 분야에서 국민적 합의와 줄기찬 인내,노력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극일하자면서도 지난해 우리는 안사먹어도 되는 일본산 광어를
100억원어치나 소비하였다. 기술과 자본은 일본에 크게 예속되어
있으면서도 지난해 우리는 일본담배를 가장많이 부끄럼없이 사피웠으며
우리들은 일본을 관광하면서 일본전자제품과 코끼리밥솥을 싹쓸이하여
사오지않았는가. 우리는 연구개발을 게을리하면서 그 쪽에서는 들은 척도
않는데 기술이전하라고 우기고 있다.

진정한 극일의 자세는 이처럼 단순논리의 죄없는 국립중앙박물관을
철거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의식속에 잠재되어 있는 일본에 대한
열등의식과 패배의식의 극복에서 찾아야 할 것이 아닌가.

모든 인류의 문화적 유산은 원래의 소속국가에 구애됨이 없이 현재 소유
사용하는 국가에 속한다 할수 있다. 조선총독부 건물은 한일합방이 된지
2년후인 1912년에 계획되었으나 원설계는 일본인이 아닌 독일인
게메라란데에 의해서 작성되었다. 설계가 거의 완성단계에서 1914년에
그가 급서하게 되어 불가피하게 대만총독부건축기사 노무라 이치로와
조선총독부기사 구나에다에 의해서 설계가 완료된 것이다. 당시로서는
동양최대의 건물로 경복궁내 근정전앞 부지면적 2만9,481평에 연건평
9,371평으로 5층건물의 르네상스건물양식으로 지었다. 기공식이 1916년에
시작되어 그로부터 10년만인 1926년에 준공을 보았다.

여기서 구중앙청건물을 보전해야하는 근본적 이유는 현재의 산적된 국가적
건설과제와 철거로 인한 재정적 낭비에 앞서서 이 건물이 당시 우리
근로자의 피와 땀으로 건축되었으며 소요된 대부분의 자재가 국내에서
공급되었다는 사실이다. 화강암은 모두 서울 창신동의 돌산에서 채석된
것이며 기초파일목은 압록강주변에서,대리석은 황해도 김천군등지에서
반입된 것이다. 어떻게보면 독일인 설계에 우리의 인부,우리의 자재로
완성된 이 건물을 일인들은 감독만했을 뿐이다. 대만정부 역시 당시
일본총독부로 쓰인 건물이 장개석정부이후 지금까지 대만정부의 행정원으로
그대로 대북시에 보존되어 사용되고 있다.

우리 민족의 역사의 영욕과 함께한 구중앙청은 일제가 물러난 후
대한민국정부수립을 선포한 장소였으며 그후 행정부의 상징이 되었다.
한국동란발발후 9.28 서울 수복 당시 용감한 우리 해병대에 의해서
자랑스러운 태극기가 게양되어 주권을 다시 찾은 역사의 명소이다. 또한
6.25전화에 크게 파괴된 것을 우리 손으로 복원하였다. 이제 우리는
"과거의 역사에 집착하면 현재를 잃게 되며 현재에 얽매이면 미래를 잃게
되는"역사적 교훈을 거울삼아야 한다. 진정한 "극일운동"이 무엇인가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새겨서 이를 성원해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