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김영삼대통령이 신한국창조의 기치를 높이 들고 혼신의 힘을
기울이는 것을 보니 새삼 감회가 새롭다. 부디 국민의 성원속에서 뜻을
이루어 유종의 미가 있기를 빌어 마지않는다.

더구나 나로서는 60년의 민주당정부에 참여,말석이나마 경제제일주의의
나라살리기에 심혈을 기울이다 미완으로 끝났기 때문에 성공을 비는 마음
누구보다도 간절하다.

내가 정부에 참여하게 된것은 4.19혁명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전까지는
제헌국회때 국회전문위원으로서 나라일에 관여한바도 있지만 그후 4.19가
나기까지 서울대상대에서 교직에 몸담고 있었다.

4.19혁명으로 이승만대통령이 실각하고 말았다. 그래서 허정총리가
대통령직무를 대행하기에 이른것이다. 허정내각의 구성내용을 들여다보면
대체로 무난한 인사였다고 말할수 있을 것이다. 행정에는 나름대로 경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정치에는 깊이 관여하지 않은 인사들이 망라되어
있었다. 참으로 이들에게 막중한 정치적 책임이 부과된것이다. 국정에
공백없이 합헌적절차에 따라 국회를 해산하고 새로운 선거를 통하여
국민으로부터 다시 통치권력의 수임을 얻어내는 참신한 정부를 창출하는
일이다.

따라서 허정정권이 국회를 해산하려면 여야가 정부형태나
부정선거처리문제에서 어느 정도 타협이 이루어져야한다. 그래서 선거를
실시함에는 그관리에 엄정중립을 지켜야하며 새정부가 탄생하면 미련없이
그자리를 떠나야만한다.

이와같이 허정내각은 중립적인 입장에서 선거를 관리하는 과도정부이기에
합헌적절차에 따르는 불가피한 최소한의 변경은 모르되 되도록이면
국정운영에 큰 변화가 없는 방향으로 끌고가야할 것이다. 그러나 일반
국민은 4.19의 열기에서 큰 변화를 갈망하고 있었다. 국민의 이와같은
변혁에 대한 열망에 호응할수 없는 과도정부의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우선 차관의 임면부터 이런 문제에 부딪치게 된것이다. 과도정부의
수명이 길어도 반년을 넘지못할텐데 차관까지 갈아치울 필요가 있느냐는
문제다. 행정에 공백이 생길까도 걱정이려니와 단명내각에차관으로
오고싶어하는 사람도 없다. 그러나 차관중에는 사의를 표명하는 사람도
있고 거취를 정하지 못하고 안절부절하는 사람들도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장관들이 처음에는 사표를 반려하고 그대로 남아서 집무에
충실할것을 강권한것같다.

그러나 부내에서는 말할것도 없고 부외에서도 장관과 더불어 차관도 같이
갈아야한다는 여론이 비등했던것 같다. 여러가지로 고심끝에
대학교수중에서 차관을 뽑자는 결정이 내려졌다. 4.19의 열기가 좀처럼
가라앉지않아 대학은 수업을 전면 중단한 상태였다. 따라서 과도정부가
끝나면 다시 학교로 돌아간다는 조건으로,또한 학교에서도 이를 다시
받아준다는 양해를 얻어 차관으로 기용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런 연유로 해서 고려대의 이항녕교수가 문교차관으로 5월초에
오게되었고 며칠이 지난5월5일에 내가 재무차관에 임명된것이다. 이교수로
말하면 일제시대 고등고시에 합격,행정경험도 있지만 해방후에는 과거를
뉘우치고 다시 태어난다는 기분으로 시골의 국민학교 교장으로 자진해서
나간 전기적인 인물이다. 특히 4.19후에는 대학교수협의회를 주도하면서
이대통령의 하야권고안을 결의,채택하고 성명문을 직접 낭독한 장본인이다.
따라서 이교수가 문교차관에 취임하면 학생들에게 좋은 반응이 있으리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이차관은 국회전문위원으로도 오래있었다. 그래서 문교부의 업무내용도
잘알고있었다. 나도 역시 제헌국회때부터 서울로 환도하는 1년전까지는
국회에서 전문위원을 했기때문에 재무부의 돌아가는 형편을 대략은
짐작하고 있었다.

내가 재무부에 가서 가장 궁금한것은 재정집행의 현황이었다. 특히
부정선거로 말미암아 과다지출은 없었는지,4.19의 혼란으로 세수에 지장은
없는가,이로인해 인플레를 유발할 염려는 없는가 등을 자세히
사펴야했고,또 새로 정부가 탄생하는데 옹색함이 없도록 예산잔액을
남겨놓아야 했다. 이런 재정집행상황을 점검하는것이 나의 최대관심사인데
일반직원들은 그보다도 인사문제에 관심이 쏠리고있었다.

재무장관은 차관만 새로 임명하면 인사에 대한 불평이 다소나마
수그러질줄 알았는데 오히려 눈덩이 같이 더커저만 갔다. 부내의 여론에
밀려 졸지에 인사이동을 하고보니 그야말로 졸작이 되고말았다. 그래서
인사에 대한 불만이 더욱 커지고 말았으니 참으로 딱한일이 아닐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