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의 전경련회장단회의는 한마디로 성격을 규정하자면 정부의
유화제스처에 대해 재계가 공식 화답하는 자리였다.

"투자계획을 늘리거나 조기집행키로했다"는등의 회의결과가 암시하듯
각그룹이 개별적으로 보였던 반응을 한데모아 재계전체 의견으로 공식화한
것이다.

전경련회장단들은 이날 회의에서 <>경제활성화를 위한 시설투자확대방안
<>대기업의 경영혁신방안 <>대기업상호간 신뢰협력및 경제계의
의식개혁문제등을 협의했다.

이중 시설투자확대방안과 관련해서는 경제가 활력을 찾을수있도록 기존의
투자계획을 확대하거나 앞당겨 집행키로 결정했다. 투자재원도 가능한한
유상증자등을 통해 자구적으로 조달하고 투자코스트절감을 위한
경영합리화도 적극 추진키로했다.

회장단들은 그러면서도 과거와 같이 "투자여건을 조성해달라"거나
"증자환경을 만들어 달라"는등의 요구를 일절 하지않았다. 그런 요구는
앞으로도 하지않을 방침이라고 밝혔다.

정부에 대해 "무엇을 해달라"고 요구하기보다는 스스로 할 수있는 일을
하겠다는 식이다. 최근 김영삼대통령과 재계관계자들간의 일련의 만남으로
조성된 "해빙"분위기를 깨뜨리지않으려는 노력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전경련사무국이 지난달과 이달초에 걸쳐 조사한바에 따르면 30대그룹은
올해 총15조4천7백52억원(한양등 3개그룹은 무응답)을 투자할 계획이다.
작년투자실적과 비교할때 20.6% 늘어난 규모이다.

30대그룹은 또 올들어 지금까지는 이런저런 이유로 집행실적이 부진하지만
이달부터는 투자계획을 조기집행,상반기중 계획대비 집행률을 40%까지
끌어올릴 방침이다.

전경련사무국은 중국특수등에 따른 수출수요확대,자동차 반도체등의
시설확대 필요성,섬유부문등의 고급제품개발이 이같은 투자계획확대의
배경이며 여기에 정부의 요구가 "플러스 알파"로 작용한것같다고 풀이했다.

그룹별로는 현대가 신차개발에 8천2백억원,반도체증설에 7천2백억원을
투입키로하는등 2조1천50억원을 투자하기로했으며 삼성은
반도체증설(6천억원) 가전설비(2천억원)등을 포함,총2조5천억원의
투자계획을 세워놓고있다.

럭키금성그룹은 1조5천6백억원,대우는 8천7백4억원,선경은 8천5백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그룹별 투자계획규모가 연초발표내용과 일부 차이가 나는것은
전경련사무국조사는 연구개발투자 해외유전개발투자등을 제외한
순수시설투자만을 대상으로 했기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회장단은 대기업의 경영혁신방안에 대해서도 재계가 할 일만을 제시했다.

그룹별로 우량비상장기업의 공개및 상장기업의 유상증자를 통해
소유분산을 추진하고 업종전문화를 위해 그룹내 유사업종을 합병하겠다고
밝혔다.

또 자생력이 있다고 판단되는 계열사를 분리.독립시키고
전문경영체제확립을 위해 전문경영인들에게 인사권과 급여조정및
자금운용과 관련한 권한을 부여키로했다.

그러나 어느정도 소유분산을 추진할 것인지 등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또 그룹별로 어떤 기업을 공개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언급하지않았다. 구체적 집행계획은 30대그룹 기조실장회의등을 거쳐
7~8월중 발표할 예정이라고만 설명했다.

이날 회의 의제중 이채롭게 보이는 대기업 상호간 신뢰협력구축문제에
대해서는 각그룹에 회장단 명의의 공한을 보내 서로간의 비방을 자제토록
촉구하기로했다.

이런 문제가 전경련회장회의의 의제로 채택된 자체가 극히 드문 일인데
이는 그룹총수등을 비방하는 소문이 최근 줄을 잇고있어 이를 근절키위한
것이다.

어쨌든 전경련회장단들은 지난5월11일에 이어 이번 회의에서도 정부에
대해 "무엇을 해달라"는 요구를 일절 하지않았다. 오히려 정부가 재계에
대해 또다시 강경책을 쓰지않을까 신경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따라서 경제가 올바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재계도 재계나름의 주장을
내세워 정부측과 협의하고 논쟁할수있는 여건이 조성돼야한다는 지적도
나오고있다.

물론 재계도 과도한 경제력집중이나 과거의 하도급비리와 같은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는 과감히 시정하는 자세를 보여야한다. 그러나 재계가
정부의 위세(?)에 눌려 제목소리를 내지못하는 상황도 결코
바람직하지않다는 얘기이다.

<이희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