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집으로"J은행의 김모씨(31)는 수첩에 지난달 23일을 이렇게 적어
놨었다. 그날은 한달동안의 "가출"생활을 끝내는 날이다.

김씨가 보따리를 싸 집을 떠난것은 4월26일. 책임자시험을 딱4주일
앞두고였다. 김씨가 은행에 들어온것은 지난 88년. 그후 만5년이 지난
올해야 비로소 책임자임용자격시험 응시자격(4년6개월)을 얻었다. 이왕
준비하는김에 첫해에 "귀찮기만한"시험을 붙어놓고 보자고 김씨는 마음을
다잡았었다.

그래서 입행동기 3명과 가출을 감행,회사근처에 여관방을 잡았다. 첫해
합격이라는 목표를 이루려면 "고전적"이긴 하지만 이방법이 제일이었다.
출퇴근에 쓸데없이 시간을 뺏길 필요도 없다. 또 친구들과 협조하는것이
안돌아가는 머리를 돌리는데도 제격이었다. 더욱이 업무시간에 짬짬이
공부하는것이 눈치가 보이는 요즈음이다.

그가 지난23일 치른 시험과목은 수신업무 여신업무 환업무 계산및
기업경영분석 영어등 5과목이다. 이들 과목평균점수가 60점이상이고
모든과목이 50점(영어는 40점)을 넘어야 한다. 혹시 시험에 실패하더라도
60점이 넘는 과목은 다음번 시험에서 면제받는다. 그래서 남들은
"3개년계획""5개년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한해에 한두과목씩 여유있게
통과하자는 생각에서이다.

김씨같이 올해 고시를 치렀거나 앞으로볼 사람은 은행권전체로 2만여명에
달한다. 전체 은행원15만명중 15%정도가 매년 한두차례(5월 또는
11월)실시되는 시험에 매달려있는 셈이다. 이 시험을 통과하지않는한
아무리 "뒷심"이 좋더라도 임원은 커녕 대리승진은 꿈도 꿀수없다. 실제
고시에 10여번씩 실패,입행동기가 차장인 부서에서 만년행원으로 근무하는
사람도 적지만은 않다.

그렇다고 모든 수험생들이 김씨처럼 속세를 떠나는건 아니다. 오히려
요즘엔 "편안히"준비하는 사람들이 많다.

시험에 합격한다고해도 당장 대리가 되는것도 아니니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대부분은 4~5개월전쯤 준비를 시작한다. 1주일전쯤에는
연월차휴가나 체력단련휴가등을 얻어 합법적으로 시험에만 몰두한다.

C은행의 이모차장(45)은 지난77년에 이"통과의례"를 치렀다. 물론 그때는
자격시험이 아니었다. 시험만 합격하면 6개월안에 대리를 달수있었다.
그래서 시험이름도 "대리선발시험"이었다. 일찍 붙을수록 승진이 빠른만큼
물불을 가리지않았다. 또 한과목이라도 과락하면 모든 과목의 성적을
인정받을수 없었다.

한번 실패하면 모든것이 "도로아미타불"이었다. 그래서
"가족무시""친구무시""상사무시"가 그때는 하나의 조류였었다. 윗사람들도
알아서 배려했다. 이차장의경우도 한달정도를 아침에 "얼굴도장"만 찍으면
그것으로 족했었다.

선발시험이 자격시험으로 바뀐것은 지난80년대 중반부터. 점포개설이
한계에 다다르면서 대리자리도 줄어들었다. 반면 시험에 붙는 사람은
해마다 늘어났다. 그래서 지금은 시험에 합격하고도 보통 3~4년은
기다려야 대리를 달수있다. 중소기업은행의 경우 시험을 통과하고 승진만
"목빠지게"기다리는 "대리급행원"만 1천3백여명에 달한다.

그렇다고 아무나 시험을 통과할수 있는건 아니다. 한해 합격률은 20%에
불과하다. 특히 올해부터는 여행원제도가 폐지돼 여성들도 아무런
장애없이 시험을 치를수있게돼 경쟁도 그만큼 치열해졌다. 제일은행의
경우 지난4월 실시한 고시에 여성들만 1천3백명이 응시,"우먼파워"를
과시했다. 지난해엔 2백70명에 불과했었다.

은행원으로서 처음이자 마지막시험인 책임자임용자격시험. 말그대로
책임자가 되기위해 갖춰야할 최소한의 자격을 심사하는 과정이다. 이
시험을 통과하려는 치열성만큼이나 책임자가 된후에도 일에대한 치열함이
요구된다는게 은행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하영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