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지 않으면 읽히지 않는다"
요즘의 독서풍토를 단적으로 드러내고있는 말이다. 가뜩이나 복잡한
세상에 난해하고 딱딱한 내용의 책을 끈기있게 들여다보고 있을 사람은
별로 없다. 게다가 과학기술의 발달에따라 현대사회에는 각종 문명의
이기들이 출현하게됐고 이에따라 필요한 정보는 구태여 활자화된 책을
매개로 하지않고도 얼마든지 쉽게 습득할수 있는길이 열려있다.

특히 AV(오디오 비디오)의 출현은 지식습득의 패턴에 혁명적 변화를
몰고온 계기가 됐고 이는 간편함 편리함을 추구하는 풍조와 맞물려 바쁜
현대인들이 활자매체를 더욱더 외면하게되는 커다란 원인을 제공했다.

갈수록 인기를 잃고있는 활자매체가 다시 제자리를 찾으려면 이제는
무슨책이든 쉽고 간편하며 재미있지않으면 안된다. 어떤 분야의 책이든
기존의 통념을 깨고 새롭게 변신하지않으면 더이상 독자들의 관심을 끌수가
없다.

따라서 일반적인 주제를 다룬 책들은 물론이고 정치 경제 역사 과학 사회
종교등 전문분야의 책들도 쉽게 풀어써야 베스트셀러목록에 오를수있다.
이러한 조류에 발맞춰 최근 2~3년간 쉽게쓴 경제서들이 크게 붐을 이루었고
법률교양서 자연과학도서 컴퓨터전문서 종교및 역사관련서 역시 에세이
만화 문답풀이등 쉬운 형식으로 쓴것들이 독자들의 좋은 반응을 얻어내며
꾸준히 팔려나갔다.

경제학분야에서 이러한 류의 도서가운데 가장 먼저 나온 책은 정운영씨의
"광대의 경제학". 이후 90년 가을 동국대 권오철교수가 "경제에세이"를
냈고 92년에는 유시민씨의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푸른나무),홍기현 조영달씨가 쓴 "경제학산책"
(김영사),정헌석씨의 "즐거운 회계산책",이경원씨의 "시장에서 만나는
경제이야기"등이 줄을 이어 출간됐다. 최근에는
"경제정보소프트"(이상영외저 의암출판간) "경제기사소프트"등이 선보여
장기베스트셀러에 오르고있다. 이쪽분야에서는 거의 금기시돼왔던
만화형태의 "만화일본경제"(소학사)나 "한국.한국인.한국경제"(동아출판사)
도 각광을 받고있는 책들이다.

흔히 "보기만해도 골치가 아프다"며 기피하는 법률분야에서도 법의 생활화
를 표방하며 알기쉽게 풀이한 법률교양서들이 많이 나와 누구나 쉽게 법과
친근해질수 있는 방법들을 모색하고 있다.

법과 문학을 접목시켜 이해를 돕고있는 "법률과 문학"(장경학저) "법률
춘향전"("),법과 시를 연결시킨 "법속에서 시속에서"등이 있고 이밖에도
법정을 무대로한 소설 "하얀나라 까만나라"를 비롯 수험용 육법전서가 아닌
일반법률교양서의 범주에 들어가는 책들도 많이 눈에 띈다. 또 "생활속의
법률지식"(박동섭저)과 김영사에서 시리즈로 내고있는 "재미있는
법률여행"등도 스테디셀러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어느분야보다 난해하고 흥미를 유발하기 어려운 자연과학쪽에서도
대중화를 겨냥한 책들이 활발하게 출간돼 과학의 대중화에 큰몫을
하고있다. 쉬운 과학도서의 출간붐은 특히 환경오염 공해등에 대한 관심과
맞물려 일반에게도 큰 이슈로 떠올랐기 때문.

"재미있는 여행"시리즈로 대중과학서적출판분야에서 성공을 거둔 김영사를
비롯 현암사 도서출판 푸른숲이 중심이돼 활발하게 내놓고있는
환경생태관련서적들을 들수있다.

루이스 엡스타인과 폴 휴미트공저인 "물리학을 생각하기"의 한국어판인
"재미있는 물리여행"은 20만부이상 팔렸고 김용운 김용국씨가 4권으로 펴낸
"재미있는 수학여행"도 15만부이상 판매됐다. 이분야에서는 일찍이
전파과학사와 범양사등이 뛰어들어 과학신서및 시리즈물을 내왔다.

과학서적의 범주에 드는 컴퓨터관련서적중에도 친근하고 쉽게
접근할수있는 방법을 일러주는 해설서들이 많다. 컴퓨터가 일반에까지
널리 보급되면서 "컴퓨터는 깡통이다"(가서원) "알기쉬운
PC교실"(한국통신)등 초보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재미있게 소개한 책들이
다양하게 나와있다.

철학서적들도 "철학우화집"이라는 독특한 장르를 개척하면서
일반대중들에게 가까이 접근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지난 91년 인도의
명상철학자 오쇼 라즈니시의 "배꼽"(장원)이 나온이후 구성이나 내용이
유사한 책들이 상당수 쏟아져 나와 인기를 끌었다. 관심을 모았던 대표적
철학서로는 "성자가된 청소부" "숭어" "보석상자""스트로볼로스의
마법사"등이 있고 17세기 스페인의 철학자 발타자르 크라시안의
"세상을보는 지혜"는 스테디셀러의 자리를 굳혔다.

역사서적분야에서도 기존의 천편일률적인 편년식 서술에서 벗어나 "거꾸로
읽는 세계사"(푸른나무)"바로보는 우리역사"(거름)"사진과 그림으로보는
한국의 역사"(웅진)등 획기적인 기획의 역사서들이 각광을 받았고
이야기식으로 서술한 "이야기 한국사""이야기 세계사""이야기 미국사"등의
책들이 눈길을 끌었다. 이처럼 쉽게 풀어쓴 책들은 어려운 학문들을
대중화한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지나치게
상업성에만 치중,말그대로 깊이가 없이 피상적으로 흐를 큰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어 보다 신중을 기한 기획이 요구된다는 지적이다.

<백창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