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한원CC에서 열린 프로테스트에서는 한 명의 프로골퍼도 탄생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어 벌어진 충주CC선발대회에서는 26명의 프로골퍼가
무더기로 탄생했다. 금년의 무더기 프로탄생과 지난해 프로테스트에서의
스코어조작사건을 떠올리면서 이번 합격자들이나 프로골퍼지망생들에게
한마디 하고 싶다.

프로골퍼가 되는 것은 공인이 되는 것이다. 공인은 개인의 성장과 아울러
책임을 다하여 일반의 모범이될 사명을 가지고 있다. 우선 미보비존스의
에피소드가 골프라는 운동과 주목받는 공인으로서의 상관관계를 나타낸다.
1925년도 US 오픈이 매사추세츠주의 워세스더CC에서 열렸다. 보비존스는
자신이 어드레스하면서 그의 볼이 움직였음을 선언하고는 자신에게 1타의
벌타를 부과했다. 그런데 이벌타는 결국 보비로 하여금 월리맥팔레인과
연장전을 벌이게 하였고 그로인하여 다음날 우승을 놓치게 됐다. 그후
사람들이 그의 이같은 스포츠맨십을 칭송하자 보비는 다음과 같이 말을
하면서 화를 냈다. "운동선수가 경기규칙을 따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규칙에 따라 경기를 하는 선수를 칭찬하는것은 은행을 털지않은
강도를 칭찬하는 것과 같다"
이런 그를 두고 미국골프계에서는 역대우승자들 가운데에서 경기인으로서
뿐만아니라 신사로서도 가장 뛰어난 인물로 보비 존스를 받들고 있다.

한편 보비 존스도 젊었을 때에는 좋지못한 일화도 많았다.
그는 1921년 전영오픈에 출장하여 처음으로 세인트앤드루스 GC 올드코스를
보게 되었는데 다른 어떤 골프코스보다 그 코스를 좋아하게 됐다. 그러나
마지막 라운드에서 그는 샷이 난조를 보여 전반9홀에서 무려 46타를 쳤고
10번홀에서는 더블보기를,그리고 파3의 11홀에서도 5타를 기록했다. 이에
분을 참지 못한 보비존스는 볼을 주워 주머니에 넣고 스코어카드를
갈기갈기 찢어 바람에 날려 보낸뒤 코스밖으로 걸어 나가버렸다. 이때문에
잔뜩 기대를 갖고 나왔던 관중들은 그에 대해 빗발치듯 비난을 쏟아
부었다.

그는 이어 벌어진 전미아마추어 대회에서도 샷이 잘안되자 이번에는 잡고
있던 클럽을 내던진 것이 갤러리에 맞아 더욱 곤경에 처하게 됐다. 마침내
미국골프협회에서도 그가 만일 한번만 더 성내는 행동을 보이면 다시는
대회출전을 못하도록 한다는 징계조치를 내리게 되었다. 이런 일이 있은
뒤부터 보비존스는 크게 반성하고 앞서 본바와 같이 골프계의 이상형이
되었던 것이다.

나는 우리나라 골프의 발전과 대중화에 있어서의 지름길은 보비존스와
같은 골퍼의 출현이라고 믿고 있다. 골프의 불모지인 독일에서 랑거가
지난 매스터즈대회에서 우승한 뒤 엄청난 골프붐이 일고 있다는 외신보도는
이러한 나의 생각을 뒷받침하는 것으로도 볼수 있을 것이다. 황영조선수가
올림픽에서 우승하자 국민 모두가 마라톤에 대한 지원을 즐거이 받아들이고
있는 사실도 마찬가지라 하겠다.

실력과 매너를 겸비한 스타의 출현,그것이야 말로 한국골프발전의
기폭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