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9월초의 어느 날이었다. 마침 배달된 신문을 뒤적이고 있는데 갑자기
내 이름이 커다랗게 나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고
보았더니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회장에 내정되었다는 3단기사였다.
나로서는 너무나 뜻밖이고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당시는 공화당 정부가 막을 내리고 5공시대가 출범하려 하던 때라 국회가
언제 해산될지도 모를 일이며 그렇게 된다면 별수 없이 다시 본업으로
돌아가 그동안 정치한답시고 소홀히 했던 삼화인쇄등의 경영에 전념할까
생각하고 있던 중이었다.

신문을 읽고 나니 전혀 뜻밖의 일이긴 했지만 한편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나는 그동안 중소기업(삼화인쇄 삼화출판사
삼화플라콘등)경영을 25년간 해왔으며 62년부터 전국인쇄공업협동조합
회장직을 9년,서울 상공회의소와 대한상공회의소 의원을 9년동안 맡은
바있고 또 71년부터 80년까지 국회상공위원으로서 10년간 의정활동을 해
왔던 것이다. 한편 중앙회와는 그 설립 당시부터 9년간 이사직을 맡은
인연이 있었다. 그러니 나도 그만하면 자격은 있다고 은근히 자부하면서도
근거없는 낭설이 하도 많이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는 시절이라 그정도로
가볍게 생각하고 별로 개의치 않았다.

이렇게 말하면 조금 건방지게 들릴지 모르겠으나 나는 보통학교(지금의
국민학교)때부터 우리나라의 독립을 쟁취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집안 어른들의 가르침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심취하여
밤새는 줄 모르고 읽었던 세계의 10대위인전에 나오는 인도의 간디,중국의
장개석,독일의 힌덴부르크등의 애국 투혼이나 플루타르크영웅전에
감화되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 꿈은 45년의 해방과 더불어
목표를 잃고만 셈인데 그대신 지금부터는 제2의 독립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제2의 독립운동이란 무엇인가. 비록 정치적으로 독립은 되었다 하나
그것은 국토 분단으로 반조각의 독립에 불과했고 따지고 보면 우리가
일제의 침략을 받은 것도 우리의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의
힘을 기르려면 무엇보다도 경제를 건설해야 한다. 일제가 우리를 침략한
1910년부터 1백년이내,즉 2010년까지 경제적으로 완전 자주독립하는 나라로
발전시켜 우리나라도 남부럽지 않은 경제대국이 되어야 하겠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독립이다. 나는 이것을 제2의 독립운동이라 부르고
그것을 위해 온힘을 쏟고자 한것이 젊은 시절 나의 꿈이었다.

날이감에 따라 그꿈은 신념으로 굳어져갔고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실천해왔다. 삼화인쇄라는 소기업을 창업하여 그것을 가꾸고 키우는데
애로도 많았으나 이경험은 후일 내가 국회 상공위원이 되었을때 중소기업을
육성발전시켜야 한다는 사명감을 굳히는데 현실적인 뒷받침이
되었을뿐아니라 그 방향을 설정하는데 큰도움이 되었다. 중소기업
육성에는 우선 법적 제도적 뒷받침이 가장 중요하다고 느껴 그 정비작업에
큰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시절 내가 중심이 되어 입법했거나 개정한
중소기업관련법이 8개였는데 당시 조선일보 기자였던 주돈식씨(현
청와대정무수석비서관)의 조사에 의하면 제헌국회 이후의
최다의원입법자라는 것이었다. 좀 엉뚱한 이야기지만 법이라고는 별로
알지못하는 내가 최다입법자라니. 그러나 중요한것은 법의 정신이고
그것을 실현시키겠다는 의지가 아니겠는가. 이래서 나는 중소기업전문
국회의원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앞서말한 신문기사가 난지 2주일쯤 지난뒤였다. 9월중순께 당시 서석준
상공부장관으로부터 점심이나 함께하자는 전화가 왔다. 가보았더니 당시
중앙회 회장인 김봉재씨도 자리를 함께하고 있었다. 그자리에서 서장관이
나에게 중앙회 회장에 취임해 달라고 정식제의를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중앙회의 예산이 부족하니 1억원을 추가지원하고 연말까지의 회장판공비와
회장승용차 구입비로 5천만원을 보조해준다는 것이었다. 한편 현직 국회
상공위원장을 중앙회 회장으로 천거하는데 있어서 예우를 어떻게 했으면
좋은가하는 문제에 대하여 여러가지 공론이 있었으나 결국 국회의원
겸직으로해도 좋다는 최고위층의 승인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나는 도대체 누가 나를 천거해 주었는지 궁금했다. 후에 당시 경호실
차장으로 있던 고명승씨를 만날 기회가 있어서 그 궁금증이 풀렸다.
고차장 말에 의하면 자기가 전 정치인들의 신원을 조사해 봤는데 상공위원
10년에 단 한건도 걸릴것이 없는 국회의원이 나였다는 것이다. 사실 나는
못나서 그런지는 몰라도 국회의원 10년에 안국동 현민자당 당사 건물과
대지 1천3백50평,마포 가든호텔 앞 땅1천5백평을 팔았고
검인정교과서주식회사의 대주주로서의 수입도 거의 쏟아넣었는데 이런
바보를 알아주는때도 있구나하고 내심 어떤 자부심 같은것을 느꼈다.
이렇게해서 나는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회장의 자리를 맡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