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제군주의 나라에서는 임금의 명령이 곧 법이요,모든 정치가 이
명령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러나 "언관"과 "사관"이 자유롭게 일할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빈틈없이 마련돼 있었던 조선왕조시대에는 임금이 마음대로
할수 있는 일이란 것이 따지고 보면 별로 없었다.

임금이 갖추어야할 중요한 덕목중의 하나는 엎드려 간하는 신하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었다. 요즘의 여론조사와 같은 방법으로 백성의 소리를
들으려 한 임금도 있었다. 세종이 공법이라는 새 세법을 정하기까지에는
16만명에 달하는 백성의 소리를 들었다고 기록돼 전한다.

언관이나 사관의 소임은 극간하는 일이었다. 서거정의 표현대로 "벼락이
떨어져도 목에 칼이 들어가도 서슴지 않는다"(항뇌정도부 이불사)는 것이
이들의 기본정신이었다.

그들은 비록 부유한 집안의 아들들이라도 토홍빛 옷을 입고 떨어진 안장에
비루먹은 말을 타고 다녔다. 이런 언관과 사관이 있는 동안 정치가
잘못되거나 역사가 왜곡되는 일은 없었다.

임금을 비롯한 권력층도 이들을 포용하는 넓은 아량을 가지고 있었다.
당장 귀에 거슬리고 비위에 틀리는 말이라도 들을줄 아는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500년 조선왕조역사중 연산조 11년동안은 언로가 철저하게 막혔던
시대였다.

"무릇 인군의 과실은 백세후일지라도 논하는 것이 잘못"이라고 늘
으름짱을 놓곤했던 연산군은 언관들을 가리켜 "입은 "공"하나 마음은
"사"에 빠져 안팎이 같지않다"고 힐책했다. 툭하면 언관이나 사관들에게
시를 지어보내면서 그내용과 같은 율시를 지어 바치라고 했고 그때는
연꽃이나 작약꽃 한가지와 술을 함께 보내 풍류군주의 멋을 한껏 부리며
그들을 조롱하기도 했다.

언관들이 앞다투어 간하는 것을 자신만만하게 "말류의 폐단"이라고
몰아붙였던 연산군은 결국 온갖 수단을 모두 동원해 언관들의 입을 봉해
버렸다.

그때부터 백성들은 고삐풀린 말의 등에 업혀 달리는 꼴이 되고 말았다.
임금의 언행을 항상 감시하고 비판해 그 노선이 빗나가는 것을 막고 생각이
미치지 못한 것을 북돋워 주는 언관의 소임은 연산조에 와서 완전히 멈춰
버렸다.

특히 그가 "중종반정"으로 왕위에서 쫓겨날때까지 말년 3년6개월동안은
완전한 암흑기였다. 실제로 "연산군일기"를 읽어 내려가다 보면 이
기간동안 개인의 상소는 전혀 보이지 않고 짜증이 날 정도로 "왕이
전교하기를."하고 시작되는 글줄만이 눈을 어지럽힌다.

임금에게 밉보이면 목숨마저 위태로운 때였지만 언관출신의 우의정
성준,좌의정 한치형등 의정부 노대신들이 언로를 열라고 극간하는 상소를
올렸다.

언로가 넓지 못한데서 오는 폐단을 "스스로 옳다는것"(자시) "편협한
마음"(유협) "의심하는것"(회의)이라고 규정한 이들은 조목조목 따져가며
임금의 잘못을 직언했다.

인주가 고명한 자질만을 믿고 스스로 옳고 남들은 자기만 못하다고 한다면
아첨하는 자가 날로 늘어나 충직한 말은 귀에 들리지 않을 것이고
내마음대로하고 아무도 나를 어길수 없다고 한다면 아랫사람은 명령한바를
순종할뿐 다시는 오가는 의견교환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또 의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람의 말을 믿지 않는다면 모두 두마음을 갖게돼
진심극언하는 자가 없어질 것이며 언로는 저절로 막혀버린다고 했다.

노신들은 "권세를 억제하기를 마치 뽕나무껍데기를 벗겨다가 집문짝을
엮어 궂은비 오기전에 대비하는 것과 같이하라"고 폭군에게 충심어린
진언을 하고있다.

"조선왕조실록"을 훑어보면 어느 임금이건 한결같이 언관과의 사이는
그다지 좋지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때로는 죽음까지도 감수해야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조선사회에는 오늘 당장 임금을 비판할 언관의
기능이 마비되더라도 내일의 비판을 준비하고 있는 사관이 따로 있었다.
이처럼 선인들은 현재에만 사로잡히지 않고 미래를 걱정하는 현명함도
갖추고 있었다.

최근 우리사회의 변화와 개혁의지의 물결속에서 언론개혁의 움직임도 일고
있다. 언론의 변화와 개혁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간하는 말을 들을수 있는 모든 장치와 제도를 갖추어놓고서도 늙은이와
행인에게도 말(언)을 빌리고 나무꾼에게도 말을 물어 한사람의
착한이,한가지의 착한일이 혹 빠뜨려질까 두려워했던 옛치자들의
구도자같은 마음가짐을 집권자가 배우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