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은 흐름이다. 마치 물 흐르듯 막힘이 없어야 한다.

차를 타면 으레 교통방송을 듣는다. 생방송도 있긴 하지만 연출이 따르는
방송은 아무래도 생생하지 못해서 싫다. 내가 가고 있는 길의 소통상태를
전해주는 일은 그저 조금밖에 없다. 그렇지만 목적지 까지의 길의 상태를
가늠하기에는 교통방송이 제격이다.

눈치 빠른 운전자들은 방송에서 어느 쪽 길이 밀린다고 하면 그쪽으로
간다고 한다. 방송을 통해 모든 운전자들이 소통 안되는 그쪽을 피해 가기
때문에 오히려 밀리지 않는다던가.

방송을 듣다보면 모니터인 진행자들의 일성에 감동할 때가 많다. 차량이
많이 밀려서 정체가 심하다는 얘기를 마치 자기 잘못인양 단 한번도 같은
표현을 쓰지 않는 것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체된 상태를 표현하면서 "답답한 정체를 빚고 있다""지체된 길이가 더
길어지고 있다" "차간 거리가 좁혀지고 있다" "움직이지 않는 시간이
길어진다" "순조롭게 지나기 어렵다"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길게
서행하고 있다"고 한다.

속도로 정체를 나타낸 때는 "차량 속도가 뚝 떨어져 있다""제 속도 내기가
어렵다"또 진행상태를 표현하는 경우는 "정상운행이 방해받고 있다""더딘
진행 보인다""진행에 불편을 겪고 있다""힘겹고 어려운 진행을 보이고
있다"고도 한다.
신호를 가지고 얘기하는 경우 "신호 두세번 받아야 지날 수
있다""신호대기시간 지루하다"고도 한다. 또 "소통과 정체를
반복한다""지체와 서행이 반복된다""수월하게 지나가지 못한다"는 등
하루가 다르게 표현을 달리 해 간다.

세상이 살 가치가 있는 이유는 어제보다는 오늘이,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나아진다는 데 있다. 어제의 구습만을 되풀이 하지 않고 짜증나는 같은
이야기라도 조금씩 달리 표현하려는 혁신이 듣는 이들에게 청신함을 준다.

그 청신함은 마치 길이 훤히 뚫린 듯한 환청까지 일으키게 한다.

은행의 화폐유통기능도 마찬가지다.

언젠가는 풀릴것을 기대하며 꽉 막힌 차속에서의 기다림은 보는 이도
답답하다.

도로에 차가 밀리는 것이 수익자인 내 차량의 독주에 기인한 것이어서
특별히 불평할 수만은 없다. 돌고 돌아야 하는 돈이 정작 필요한 이에겐
늘 막힌 길로만 인식되지 않도록 소비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할 수는 없을까.

그리고 실제로 근래들어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는 은행의 역할이나
달라지는 모습을 더 잘 알릴 수는 없을까. 말하자면 금융방송 같은 것
말이다.

위로는 대통령으로부터 아래로는 촌부의 아낙네에 이르기까지 모든이들이
제각기 다른 이유 때문에 필요로 하는 화폐의 융통이 답답한 정체만을
빚는다는 질타를 들을 때면 교통방송처럼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