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시장경제 메커니즘이 누가 발명해낸 것이라면 이는 아마도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의 하나가 됐을 것이다" 작년 93세로 작고한
"20세기 애덤 스미스 후예"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자유시장경제 메커니즘
의 오묘한 조화에 거듭 감탄한 나머지 이런 말을 남겼다. 44년에 출간된
베스트셀러 "예종에의 길"에서 "사회주의는 그 상표가 어떻든 가난과
자유의 상실로 귀착되고 말것"이라고 예언을 발했을때 세계는 별로
주목하지 않았다.

그 "예종에의 길"은 베를린장벽 붕괴와 함께 동유럽에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체코판을 번역한 토머스 예제크가 체코의 기업부장관에
기용된 것을 비롯 폴란드와 헝가리 불가리아 루마니아에서 "하이에크
문하생"들이 일제히 경제각료로 등용됐다.
91년 미국의 부시대통령은 "20세기를 산 사람으로 동유럽 공산주의붕괴에
그만큼 크게 기여한 개인은 없다"며 개인에게 주는 최대의 영예인 "자유의
메달"을 수여했다.

"자유시장모델"의 실험은 남미에서 드문 결실을 맺고있다. 70년대
"시카고 보이"들에 의해 수술대에 올랐던 칠레 경제가 사경을 넘고
자유경쟁의 "정글"을 헤치며 "남미의 호랑이"로 등장한 것이다.

칠레의 실험은 죽음과 부활의 연속이었다. 70년대초 아옌데 공산독재때
모든 기업은 국가로 귀속되고 연1,000%의 인플레속에 극심한 생필품
품귀를 겪었다. 73년 쿠데타로 피노체트군사정부가 들어서 76년부터
시카고 경제학박사인 세르지오 디 카스트로 주도하에 자유화실험이
시작됐다. 이 15년간의 가혹한 실험결과 작년의 성장률은 9. 7%로
9년연속 성장을 기록했고 국내총생산은 10년사이 2배로,인플레는
연10%대로,실업률은 5%미만으로 떨어졌다. 수출이 늘면서 일본에 대해
최대흑자를 기록하고 외국인 투자및 대외신용면에서 남미 제1등급 국가로
평점이 뛰어올랐다.

89년 선거로 민주정부가 들어서고 북미자유무역협정에 멕시코 다음의
가입자로 선택까지 받았다. 자유무역협상이 시작되면 "미국에 맨 먼저
수출해야 할 품목은 우리의 경제팀"이라고 이들은 어깨를 으쓱한다.
지하의 하이에크가 또 한번 크게 웃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