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김한응 금융연수원 부원장

최근 정부가 경기대책을 세우면서 장기적경제전략도 함께 수립하여 우리
경제가 나아갈 방향에 흐트러짐이 없게 한것은 크게 환영할만한 일이다.

경기부양책을 세워도 장기적발전방안의 "틀"안에서 세워야 국력의 낭비가
없는 내실있는 성과가 기대될수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장기적발전방안에서
빼놓을수 없는것이 경제운용효율의 제고문제가 아닌가 생각된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경제개발계획이 수립집행되던때의 우리 경제는
농업의존적경제로서 1인당GNP도 80달러대에 불과 하이에크가 말한
소집단적성향이 강한 사회구조였다. 때문에 그의 말대로 소집단의 특징인
협동이 잘 이루어질수가 있었고 따라서 협동의 효율화를 위한
중앙집권적계획과 정부주도로 우리 경제는 고속성장을 할수가 있었다.

그런데 하이에크에 의하면 소집단이 대집단화되면 충분히 복잡해진
이해관계를 조정하여 협동을 효율적으로 이룩할수있는 조정자의 능력에도
한계가 있다. 때문에 협동은 그 집단의 행동규범으로서의 위치를 점차
상실하고 경쟁이 이에 대체된다.

우리 경제에서 소집단의 행동규범인 협동,좀 더 넓게 해석하여 "고통의
분담"이 일찍이 도전을 받은 분야는 물가라고 생각된다. 우리는 과자류가
처음 시판될때에는 맛도 좋고 함량도 제대로 들어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맛도 떨어지고 함량도 줄어드는 것을 오랫동안 보아왔다. 이는
인플레하에서의 협동,즉 손실감내를 강요하는 물가통제를 회피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물가통제회피행위는 제조업의 모든 분야에서
각양각색으로 일어났었다.

그런데 만약 정부가 물가,즉 통화가치를 안정시켰다면 물가통제를 위한
행정조직과 이에 소요되는 예산이 절약되었을 것이다. 또 기업측에서도
물가통제를 회피하기 위해 불필요하고도 자사 상품의 굿윌에 치명타를 주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않았을 것이므로 그에 따른 경비절감효과 또한 컸을
것이다.

경쟁체제를 도입하지 않음으로써 생기는 문제의 예는 대출커미션과
"꺾기"라고 할수 있다. 대출커미션은 금융기관들이 시중금리가
예대금리보다 높기 때문에 예금주에게 시중금리와의 차이를 보상해 주기
위한 재원조달용으로 그 차이만큼을 커미션으로 받는것이다.

여기에는 현실에 맞지않는 규제로 인한 마찰을 원활하게 해주는
경제적기능이 있다. 그리고 꺾기는 금융기관의 수익제고에 직접 기여하고
개인적비리의 여지도 거의 없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것으로 볼수있다.

이러한 것들을 규제한다면 금융기관들은 규제를 회피할수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으려 할것이고 감독당국은 회피행위를 적발하기 위해 인력과
시간을 낭비하는 "규제와 회피의 악순환"이 발생할 것이다.

그런데 정부가 금리를 자유화해 버린다면 대출 커미션과 꺾기는
하루아침에 없어질 것이고 경제의 효율도 그만큼 높아지게될 것이다.

뿐만아니라 자유화 즉,경쟁화는 어떤 의미에서는 경제효율의 제고보다 더
큰의미가 있는 국민대화합을 촉진하는 부수적효과도 있다. 즉 국방
보건등의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든 것을 자유화하여 온국민이
"신바람"나게 일하게 할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본다.

이러한 관점에서 비판될수 있는 것이 금융실명제이다. 금유실명제를
실시하면 모든 부정자금이 없어질 것이라는 생각에서 전경련까지 이에
찬성하고 있지만 이는 마치 금주법을 시행하면 미국전역에서 술과 모든
부도덕행위가 없어질 것이라고 착각한 19세기의 미국에 비교될수 있다.
국민대다수는 금주법의 제정을 지지하고 정부는 그에 대해 강도는 다르지만
수세적인 입장을 취했던 점도 실명제의 경우와 비슷하다.

금주법은 그후 범죄를 줄일것이라는 당초기대와는 달리 오히려 금주법에
의해 초래되는 인공적범죄가 더 증가하게 되었다는 사실과 금주법이 개인의
자유를 부당하게 억압한다는 비판때문에 결국 폐지되었다. 금융실명제도
비록 실시가 된다고 해도 민주화가 더 진행되면 개인의 자유를 속박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오래 지속될수가 없을 것이다.

이에 더해서 금융실명제는 금융자율화조치를 무색하게 할 정도로
금융기관을 규제하게 될것이며 금융기관이 이 제도를 당장 실천에 옮기기
위해 직.간접으로 투입해야 할 비용도 엄청날 것이다.

그런데 자유화 경쟁화로써 경제운용체제상의 개선이 완전히 이루어졌다고
하기는 어렵다. 공정한 경쟁을 할수있는 규칙이 만들어져서 능력껏 열심히
일한 사람은 그에 상응한 대가를 받을수있고 또 성장할수 있다는 것이
보장되지않는 한 이는 공염불이 될 것이다.

이러한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모든 분야에 걸쳐 "게임룰",즉
규칙의 규정이 필요하다. 그러한 규칙의 핵심에 있어야 하는것이
통화가치의 안정이라고 할것이다. 우리나라와 같은 상황에서는 인플레가
일어나면 어떤 물가보다도 부동산가격이 더 높게 상승하게 되어있다.
인플레는 노동의 대가로 받은 저소득층의 소득을 부동산을 많이
보유하고있는 고소득층으로 이전시키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어느 나라에서나 "돈줄"에 가까운 사람이 팽창적 통화정책을
주장하게 마련이다. 따라서 돈줄에 관해서도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지게
하기위해서는 최소한으로 지켜주어야 할것이 통화가치의 안정이다.

인플레억제가 단기적으로는 경제성장을 저해한다고 하지만 오래 지속하면
공정한 경쟁의 바탕이 되어 국민대화합도 이룰수 있다.

따라서 우리 경제의 장기적전략을 세움에 있어 협동을 전제로한
정부주도적경제운용체제에서 경쟁을 위주로 한 민간주도적체제로
바꾸는것이 긴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