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즈부인은 다카하시를 가만히 바라본다. 그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오려는지 궁금한 그런 표정이다.

다카하시는 무겁게 입을 연다.

"그런 중대한 일은 서둘러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요. 꼭 이번 가을에 거사를
해야 된다고 못박아서는 안될 것 같애요. 신중히 일을
도모해야지,서두르면 자칫 사전에 탄로가 나서 일을 그르칠 염려가 있어요"
"우리 사이고 형님이 하던 말과 비슷하군요"
아리무라는 좀 시큰둥하게 말한다.

"일이란 다 때가 무르익어야 성사가 되는 법이지요" "그럼 아직 때가
무르익지 않았다 그겁니까? 언제 무르익는 거죠? 우리 사쓰마의 동지들이
사이고 형님의 신중론을 좇아서 거사를 일단 보류한 지도 어느덧 팔개월이
넘었어요. 그래도 아직 때가 아니라면 도대체 그놈의 때는 언제란
말입니까? 거사를 감행하는 그때가 바로 때가 아닐까요?" "그런데
아리무라상,제 말을 잘 들어보세요. 우리 에도번은 사정이 사쓰마번과는
판이하게 다르다고 할수 있습니다. 피해를 가장 많이 당해서 분노가 몇
갑절 더한 게 사실이지만,그러기 때문에 더욱 신중할수밖에 없어요"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이 시즈부인과 아리무라가 거의 동시에 고개를
갸우뚱 기울인다.

"왜냐하면,일이란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거든요. 실패했을 경우를
생각해야 돼요. 만약 거사를 했다가 실패했을 경우 이이나오스케의 반격이
어떻겠어요? 지금의 유가 아닐거 아니예요. 우리 에도번은 아마 쑥밭이
되고 말 거예요. 지금은 다이묘께서 영구 칩거로 목숨은 유지하고
있지만,그렇게 될경우 사형을 당하고 말게 뻔하죠. 배후 조종자로 몰려서
말이에요. 우리 도쿠가와나리아키 도노가 이이나오스케의 가장 큰
정적(정적)이니까,결코 그냥 살려두지 않을 거예요. 옳지,잘됐다 하고
죽일게 틀림없어요. 그러니까 자칫 잘못하면 이이나오스케는 죽이질
못하고,도리어 우리 다이묘를 죽이는 결과가 될수도 있다 그겁니다" "음-
그렇군요"
아리무라는 가만가만 고개를 끄덕인다. 시즈부인도 납득이 간다는 그런
표정이다.

다카하시는 잔을 들어 목을 축이듯 쭉 들이켜고 말을 잇는다.

"사쓰마번과는 다른 그런 사정이 있기 때문에 우리 미도의 지사들이 신중을
기하고 있는 거예요. 내부적으로 결코 가만히 있지는 않다구요. 일을
꾸미고 있는 건 틀림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