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상품의 국제경쟁력 약화요인을 분석할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귀책
사유"가 있다.
"우리에게는 쓸만한 기술이없다"는 탄식이다.

기술개발이 안되기 때문에 좋은 제품을 만들수 없다는 얘기다.

정말로 우리의 기술수준은 그렇게 낮은 것인가. 새정부가
실용기술우선정책을 내걸었지만 정말로 실용화할 기술이 없어 산업화가
안되는 것인가.

과학기술계의 현장을 돌아보면 힘들게 개발해놓고도 이런저런 장애에 걸려
산업화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는 크고작은 기술들이 너무도 많음에 새삼
놀라게 된다.

본지는 이 신기술의 사장현장을 찾아 무엇이 실용화의 걸림돌인지를
밝혀내고 그 개선책을 모색하는 시리즈를 마련했다.

<편집자>

서울대 유전공학연구소 홍주봉박사. 그는 요즘 실의에 빠져있다.
지난89년 담배잎에서 탁월한 항암제인 인터루킨을 양산할수있는 원리를
어렵사리 개발해놓고도 이를 산업화하지 못하고있는 것이다.

이기술은 외국연구소들도 개발에 열을 올리고있는 첨단유전공학기술이다.

현재 미.일등에 특허를 출원해놓고 있지만 앞으로의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고 더욱이 국내업체들은 리스크를 우려,거들떠보지도 않고있어
홍박사를 더욱 애타게 하고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윤한식박사 역시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

지난 86년 기적의 섬유신소재로 불리는 아라미드펄프를 개발해 일약
세계적 명성을 얻었지만 아직도 산업화가 되지 못하고있다.

코오롱이 참여해 아라미드펄프의 주원료인 바라페니린 디아민의
생산공장을 만들었으나 연계기술개발을 소홀히해 산업화가 중지된
상태이다.

이같은 예는 비단 전문연구원들의 경우에만 그치지 않는다.

생산현장에 몸담고있는 산업계 종사자들에게서 더많이 찾을수있다.

전자파 흡수체 생산업체인 코니전자의 최재철사장(55)을 찾아갔을때 그는
"개발얘기라면 말도 꺼내지 말라"고 흥분했다.

그러면서도 답답함을 조금이라도 호소하려는듯 말문을 열었다.

코니 전자는 지난86년 전자레인지용 전자파흡수체를 개발,상품화했다.
그러자 이회사가 개발하기전까지 한국시장을 독점해온 일본의 TDK사가
덤핑공세를 시작했다.

"다른 부품값은 매년 20~30%씩 올랐는데 전자파흡수체는 TDK의 덤핑으로
오히려 20~30%씩 거꾸로 떨어졌습니다"
결국 수십억원을 들여 개발된 이 제품은 일제에 밀리고 대기업에 치여
개발비조차 건지지못한채 코니전자는 지난해 4월 법정관리로 넘어갔다.

앞서 홍주봉박사와 윤한식박사의 신기술이 각각 기업인들의 무관심과
연계기술의 미비로 실용화에 실패했다고 본다면 최재철사장의 신기술은
실용화를 해놓고도 외국회사의 집요한 덤핑공세로 물거품이 돼버린 경우에
해당된다.

기술선진국들은 일찍부터 기술의 실용화를 중시하는 정책을 펴오고있다.

프랑스의 리용국립응용과학원(INSA LYON)은 지난88년 자본금95만프랑의
기술중개회사를 설립했다. 과학원에서 개발한 기술을 기업에 내다파는
기술분양회사인 셈이다.

이회사는 실용화를 전제하지않은 과학기술논문은 그 내용이 획기적인
것이라해도 아무런 가치를 인정해줄수 없다고까지 말하고있다.

"선진국의 기술보호주의가 강화돼 쓸만한 기술은 돈을 주고도 살수없는
시대가 됐습니다. 기술자립을 위해서는 신기술개발도 중요하지만 개발된
기술을 응용해 산업화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고 시급합니다"
생산기술연구원의 서상혁박사도 이제 과학기술은 연구실에서 뛰쳐나와
산업현장으로 연결되는 것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선진국의 기술보호주의장벽이 얼마나 높아가고 있는지는 우리의
해외기술도입추세를 보면 실감할수 있다.

지난 89년만해도 7백63건에 달했던 기술도입은 90년에 7백38건으로 3.3%가
줄어든데 이어 91년에는 5백82건으로 21.1%나 격감했다.

이같은 감소추세는 그동안 국내기업의 기술개발력이 제고됨으로써
자체연구개발에의한 기술자립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주요기술제공국의 이전기피현상의 심화에따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제 선진국에 기술이전을 애걸하기보다는 우리의 무관심으로 사장된
기술을 부활시키고 일단 개발된 기술은 최대한 실용화하는데 자금과 인력을
집중투입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화려한 과학지식을 보유했었던 구소련이 기술의 실용화를 등한시해
하루아침에 전락한 역사적 경험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기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