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무엇때문에 끝없이 이어지는 시간의 흐름에 마디를 내 이름을 붙이
기 시작했을까. 새해를 맞을 때마다 흰 도화지 앞에 앉은 개구장이같은 기
분이 든다. 제가 봐도 조잡하기만해 구겨버리고말길 되풀이하는 꼴이 될진
몰라도, 그래도 이번에는 잘 그려보겠다고 첫 획에 정성을 쏟는다. 시작이
라는 것은 바로 그래서 좋다.

"30년만의 문민대통령"은 어떻게 시작할까.

우선 관심은 그가 테크노크라트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모아진
다. 김영삼대통령당선자의 말처럼 "인사가 만사"이고 보면 앞으로의 경제
운용을 누구에게 맡기느냐는 문제는 당선자가 그려야할 첫 획이라고 하겠
다.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세력들은 경제를 안다고 생각할때 망한다는 얘기가
있다. 집권초기에는 경제지식이 전무상태이기 때문에 경제운용을 테크노크
라트들에게 맡겨 그런대로 성과를 거두지만,세월이 가면서 돈맛도 알게되
고 어깨너머로 경제용어도 한두마디 주워듣게되면 경제에 깊게 관여, 무리
수를 두거나 부패를 극대화시켜 쫓겨난다는 것. 동남아나 중남미의 경우
대체로 그랬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박정희대통령이 집권말기에 경제장관들의 반대를 무릅
쓰고 농촌주택개량 방산투자확대를 추진,건자재파동-집값폭등을 불러 불균
형을 가중시키기도 했다.

오랜 기간동안 군부집권에 대항해 싸웠던 "문민대통령"과는 관계가 없는
얘기를 왜 하느냐고 할지모르나 사실은 그렇지않다. "민주주의"가 쟁점의
전부일 수 밖에 없었던 불행한 정치풍토,바로 거기에서 커와야했기 때문에
그의 경제에대한 이해는 집권초기의 군인들보다 크게 나을게 없을 것같다.
테크노크라트들과의 인간적인 교분이 많지않을 것이란 점에서도 유사할 것
같다.

어쨌든 김당선자가 어떤 사람들을 경제장관이나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으
로 쓸지 관심사다.

우선 직업정치인들을 기용하는 것도 생각해 볼수있다. 다음 몇가지 이유
때문에 김당선자가 직업정치인을 경제장관으로 기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사람들도 많다.

우선 김당선자가 가장 믿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그사람들이 아니겠느냐는
얘기다. 20여년간 경제가 그런대로 굴러온 탓으로 "경제가 벌거냐"고 생
각하는게 일반적이고 보면 야당투사형 직업정치인들이라고 경제장관을 꼭
사양할 것 같지만도 않다. 또 1회용반창고처럼 그동안 사람을 마구 써온
탓으로 새출발에 걸맞는 신선미있는 경제전문가가 별로 눈에 띄지않는다
는 점도 정치인출신 경제장관의 가능성을 더하게 한다.

내각책임제를 택하고있는 탓이겠지만 일본의 경우 경제장관이 직업정치
인의 전유물이 된게 오래이기도 하다. 직업관료의 층이 두텁고 신분보장
이 확고하기 때문에 누가 경제장관이 되더라도 별문제가 될수 없는게 일
본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는 바꾸어 말하면 대통령이 바뀌면 중앙부처 주
요국장이 다 바뀔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는 우리 풍토에서는 아직 정치
장관은 시기상조라는 주장이 된다.

경제관료들중에는 교수출신 장관에대해서도 알레르기성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물정도 모르면서 명분에 지나치게 경도되거나 관리능력에
문제가 많다는 지적들이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봐도 성공작보다는 실
패작이 많지않았느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이들은 기업인의 경제장관기용에 대해서는 아예 말도 안된다는 반응을
보이는게 보통이다. 경쟁업체등을 감안할때 공정성이라는 측면에서 문제
가 제기될 우려가 클뿐 아니라 기업인의 경우 대체로 매크로경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이렇게되면 남는건 관료출신뿐이다. 그러나 현직관료들도 "그동안의
관료출신 장관이 꼭 성공작이었느냐"는 반문에는 별로 할말이 없는것 같
다. "관료출신으로 업계경험을 쌓았고 정치적인 영향력도 겸비, 외풍을
막아줄 사람"이 좋은데 입에 맞는 떡이 마땅치 않으니 문제다. 정말 복
잡하게 들리는 얘기다.

과연 경제장관의 요건은 뭘까. 전체를 보는 건전한 상식이다.

부처이기주의에 집착,"장관은 많은데 국무위원은 없다"는 개탄을 나오
게 만들었던 과거를 되새기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국방장관이 꼭
군인출신이어야 하는 시대는 지났다. 마찬가지로 경제전문가만이 경제장
관을 해야하는 시대도 갔다. 단 한가지 직업관료들에 대한 신분보장과
공정한 인사만 보장된다면 그렇다.

[주 제] 인사정책 기업인 정치인 경제인
[면 종] 5면 오피니언
[저 자] 신상민 편집부국장대우 산업1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