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12월초하루,마지막 잎새처럼 1992년의 달력도 쓸쓸하게 한장만
남는다. 이 한달을 남겨놓고 92년은 과연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나 되돌아
보는 것은 성급할수 있다. 하지만 18일의 대선이 끼여있는 12월달이 어떨
것이라는 점은 불을 보듯 뻔하고 그럴수록 남은 한달만이라도 정신을
차려야하며 1993년이 이 한달동안의 설계에 달렸다는 뜻에서 92년의 족적이
음미되어야 한다.

2월의 총선북새통으로 부터 12월의 대선에 이르기까지 나라의 신경은 온통
정치판이 좌우했다. 경제제일주의는 간판만 걸어놓고 국민들은 유설장에
신경을 뺏겨 생업엔 소홀했다. 이 계산서가 3.4분기 3.1%라는 성장률
둔화이다. 설비투자가 작년 동기보다 3.2%나 떨어진 기업의욕 실종이다.
원인제공자는 물론 정국이지만 경제주체들이 정치만 바라보며 경제의 넋을
잃은것도 문제다.

후발국이 선진국을 따라잡으려면 내부결속의 문화가 필수조건이다.
독일과 일본이 그랬다. 한국도 개발년대에는 그랬다. 그런데 92년의
한국에는 갈등만 증폭되었다. 제조업 경쟁력강화라는 팻말을 내걸고
정부가 가장 많이 궁리한 것은 여신규제와 상호지보규제였다. 비록
바람직한 일일지 몰라도 경제에 엄청난 충격을 주는 일은 머리를 맞대고
상의해야 할것인데 재계는 다만 피고의 입장이었다. 법정에 불려다니면서
경제전쟁의 갑옷을 준비할수 있겠는가. 정부와 재계가 힘겨루기 내홍을
벌이면서 시장개방이라는 "외침"을 막고 수출이라는 "진군"을 할수
있겠는가.

남이 잘되면 나에게도 잘될 기회가 늘어난다는 것이 사회적 정서로 돼야
시장경제는 창달된다. 남이 잘되면 내가 잘될 기회가 줄어든다는 정서로는
경제가 번창할수 없다. 이것은 질투의 경제학이다. 사회를 긍정보다는
부정이 지배하게 만든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보완관계 보다는
상반관계로 파악하게 한다. 올해의 경제정책이 이같은 질투의 경제학에
편승한 점은 없는지 반성해야 한다.

92년에 두드러진 현상중의 또 하나는 각종 시책이 용두사미로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다. 제조업경쟁력 강화를 내세웠지만
경쟁력은 약화되었다. 준조세를 대폭 줄인다고 했지만 준조세는
늘어나기만 했다. 중소기업지원은 말만 요란할뿐 올해들어서 무더기로
쓰러지고 있는 것이 중소기업이다. 행정규제 완화도 말로 그치고 있다.
정책집행의 철저한 현장점검이 시원찮은 것이다. 시책만 연방 발표됐지
되는 일이라고는 없다는게 중론이다.

그래도 3.4분기에 수출이 10.8%늘었다고 자위한다. 그러나 사실은
우리경제의 견인차인 수출에 가장 큰 문제가 걸려 있다. 올해 들어서
미.일등 주력시장에서 한국상품의 시장점유율은 계속 움츠러들고 있다.
그나마도 수출이 는것은 하급시장으로라도 밀려나 있기 때문이다.
야전에서 패퇴하여 밀림에서 짐승잡는 격이다. 그런 하급시장에서 마저도
또 쫓기게되면 다음은 어디로 갈것인가. 주력시장의 상실이야 말로
한국경제의 가장 큰 불상사다.

연초부터 인력난으로 아우성치던 기업들이 상황이 일변하여 이제는 고용을
줄이고 있다. 3.4분기 제조업고용은 4.3%가 줄어 젊은층의 실업이 늘고
있다. 이것은 경제침체의 총체적 표현일수 있다. 그 왕성하던 의욕들이
지금은 좌절감으로 대체된 때문일까. 무엇이 이같은 상황을 연출한 것인지
92년의 우리의 족적에서 찾아보아야 한다.

정치는 우왕좌왕하고 행정은 현장을 경청하지않고 지표만 책상에서
매만지고 있어 불가치성과 현실이탈이 많았던 것도,신호등 고장난
로터리처럼 경제정체를 몰고왔는지 모른다. 경제주체들은 또 왜
불구경하듯 정치만 바라보고 있는 것인가. 너무 한곳에만 쏠리는 것도
92년을 자성해야할 점이다. 정치가 밥먹여 주는 사람은 극히 일부의
직업정치꾼 밖에는 없는데 거기에 명이 달린듯 일손을 놓고 있으면 경제가
잘돌리 만무하다.

이제 남은 한달만이라도 각자가 제할일을 해야한다. 그렇지 못하면 92년
한해를 온통 잃게 된다. 새정부만 들어서면.하고 막연히 기대할것이 없다.
내년2월 새정권이 들어서도 정계의 이합,권력분배,제2인자문제,단체장
선거쟁점등으로 시끄럽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계속 정치만 바라보고
있다가는 1993년마저 잃게 된다.

정치가 어떻게 돌아가든 모두가 자기일에 성실하면 경제를 다시 일으킬수
있다. 일본경제가 오일쇼크와 엔고의 어려움속에서 더 강해졌듯이 우리도
역경속에서 힘을 기를수 있다. 우선 12월을 정신차려 마감하면서 93년
재기의 설계를 꾸미자. 우수한 관료조직과 경제조직이 두 기둥이 되어
사명감을 가지고 경제를 치켜올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