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경제를 보는 시각은 크게 두가지로 나누어진다. 정부당국은
우리 경제구조가 건실해지고 있다고 보고 안정시책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런가 하면 업계에서는 한국경제가 심각한 침체국면을 맞고
있어 이러다간 성장기반이 무너질 우려가 있다고 보고 있다.

최각규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은 최근 성장둔화에도 불구하고 내수경기
부양책을 쓰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내수진정속도가 당초 전망보다
빨라지면서 물가가 안정되고 국제수지가 앞당겨 개선되고 있는것이
경제구조가 건실해지고 있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우선 통계로 나타난 물가동향과 국제수지개선을 보면 정부당국자의
이야기에 일면 수긍이 가지 않는것은 아니다. 그러나 물가불안요인이
여러곳에 도사리고 있고 국제수지개선도 그 내용을 보면 안심할수 없다.

올들어 무역적자폭이 계속 감소,8월에는 처음으로 무역수지(통관기준)가
흑자를 기록했다. 이러한 추세로 나가면 무역적자국면을 벗어날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질수 있다. 8월까지 수출증가율은 9%인데 비해
수입증가율은 불과 2. 4%에 그쳤다. 무역수지개선은 수입증가율이
감소한데 따른 결과다.

그러나 무역수지개선의 내용을 조금만 들여다 보면 결코 낙관할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수출증가는 내수부진으로 재고가 늘어나자 가격인하를
통해 출혈수출로 지탱하고 있다는게 무협의 분석이다. 올상반기
수출물량은 11% 증가되었으나 수출단가는 2. 3% 하락했다는게 이를
말해준다.

더욱이 수입증가율의 감소는 국내경기침체를 반영한 것이다. 원자재나
자본재수입증가율이 소비재수입 증가율보다 둔화되었고 설비투자및
수출용부품의 수입은 감소세를 보였다. 따라서 경기가 되살아나면 수입은
폭발적으로 늘어날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무역수지적자폭의 개선도
이와같이 그 내용을 보면 불안하기 그지 없다.

한은이 발표한 지난 2.4분기 경제성장률은 1.4분기의 7. 4%보다 낮은 6.
0%를 기록,상반기 전체로는 6. 7%였다. 이를 두고 우리경제의
잠재성장률(7% 내외)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시각이 있지만 우리는
경제성장률이 높다거나 낮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성장의 내용이다.

적정수준의 경제성장을 유지할수 있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가. 가장
중요한 원천은 설비투자가 적정수준을 유지하는데에 있다. 봄에 씨앗을
뿌려야 가을에 수확을 거둘수 있듯 성장을 지속적으로 이루어 가려면
설비투자가 늘어나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설비투자가 극히
저조하다는 점이다.

올1.4분기 설비투자증가율은 8. 6%였으나 2.4분기에는 4. 3%로 더욱
낮아져 상반기 전체로는 6. 4%에 그쳤다. 이는 91년 상반기실적 15.
7%에 비해 크게 낮은 수준이다. 하반기에 설비투자는 부진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지금 씨앗을 뿌리지 않으면 다음단계의 성장은 기대하기
어렵다. 사정이 이러한데 단순히 경제성장률이 잠재성장률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안심하고 있을수는 없다.

최각규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은 설비투자가 둔화되는 점을 감안,연초에
책정한 기계국산화자금 기술개발자금등 각종 설비투자자금이 원활히
공급되도록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설비투자의 저조는 단순히 이용가능한
자금의 부족때문만은 아니다.

자금의 부족은 말할것 없고 세계적인 고금리에다 각종 행정규제
준조세등의 요인이 기업의 투자마인드를 위축시키고있다. 20%에 가까운
실효금리를 부담하면서 중장기 투자를 할 기업이 과연 얼마나 있겠는가.

쓰러지지 않기 위해 현상유지에 급급한것이 오늘날 기업현장의 실상이다.

기업의 투자는 미래의 부확실성에 대한 하나의 도전이다. 기업가에게
이러한 도전을 할수 있게 여건을 만들어주는것은 정부가 해야할 몫이다.
지금 기업의 투자마인드를 위축시키고 있는 또다른 요인은 정권교체기의
혼란이다.

장래 기업환경이 어떻게 변할지,어떤 상황이 올것인지에 대한 예측을
어렵게 하고 있고 이는 불확실성을 증폭시켜 주고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업은 "기다리고 보자"는 생각을 갖는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대통령선거가 가까이 다가올수록 온갖 공약이 봇물처럼 터져나올 것이다.
그런 공약중에는 냉온탕식 공약,즉 개혁을 앞세우는 것과 현상유지적인것이
섞여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경제가 제대로 살아나려면 경제정책의 일관성과 합리성이
있어야 한다. 일관성과 합리성이 결여되면 기업을 살리겠다고 해도 그건
일종의 수사적 표현일뿐 정작 산업현장에서 뛸 기업가의 마음을 움직일수
없다.

이런 점을 망각한 경기논쟁이나 통계숫자풀이로 경제를 이해하려는 시각의
교정이 그 어느때보다 필요하고도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