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정부가 발표한 하반기경제운용계획은 경제팀장인 최각규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이 11개 여타경제부처장관들이 배석한가운데 이날오전
청와대에서 노태우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한 거창한 모양새와는 대조적으로
아무 새로운 내용도,기조면에서 상반기와 전혀 차이가 없는 내용이다.
번거로운 보고절차가 무색하고 지각발표의 배경이 의아스러울 지경이다.

어쨌든 이 운용계획은 한가지 분명한 메시지를 전하고있다. 정부의
경제운용이 하반기에도 계속해서 안정화시책을 꾸준하고 일관성있게
밀고나가는 내용이 될것임을 거듭 확인하고있다. 이같은 방침은
기본적으로 첫째 국내외 경제환경에 이렇다할 아무런 변화가 없으며,둘째
특히 국내경제상황에 관한 시각에 그 어떤 변동도 없다는 입장을 바닥에
깔고있다. 만약 이런 시각이 잘못된것이면 하반기경제운용은 빗나가게
되고 그결과는 우리경제로 하여금 더큰 시련과 비싼 대가를 지불하게
만들것이다.

가장 주목해야할 대목은 역시 경제계와 동떨어진 국내경기 시각이다.
발표된 하반기운용계획에서 정부는 한결같이 우리경제가 지금 불황국면에
빠져있지는 않으며 오히려 정부가 의도한대로 안정화와 구조조정이
착실하게 진행되고있는 중이라고 여러가지 거시경제지표까지 동원해서
강조한다. 가령 실질경제성장률이 상반기에 7.3%,소비자물가상승률이
3.8%,국제수지적자가 작년동기보다 14억달러 축소개선된 41억달러라는
식이다. 굳이 불황감이 있다면 그것은 과소비진정여파로 나타나는
소비재업종과 인력난 고임금으로 경쟁력을 상실한 노동집약적업종등 제한된
일부 업종에서만 만수있는 "부분적"현상일따름이라고 설명한다. 한편
세계경제에 이르러서는 또 하반기에 서서히 회복단계로 접어들어
93년부터는 회복세가 "본격적"으로 확산될것으로 전망한다.

그러나 이런 시각은 그것이 현실진단이거나 장래예측이건간에 대다수
국민,특히 대소 기업경영인들이 갖는 체감경기와는 엄청난 거리가 있다.
체감경기는 심각한 불황국면이며 좀처럼 회복될 기미도 보이지않는다는
시각이다. 또 세계경제의 회복전망도 엊그제 폐막된 뮌헨G7정상회담의
실망적인 성과가 말해주듯이 그렇게 희망적이지 못하다.

경기진단에대한 이같은 시각차이는 정부의 경제정책전반에 대한 짙은
불신감이 그 원인이다. 신뢰가 무너진 탓으로 시각을 달리하고 그 간격이
갈수록 증폭되고있다. 따라서 무엇보다 중요한 당면과제는 정부가
하반기운용계획에서 늘 해오던대로 한번더 강조한 안정기반의
정착,산업경쟁력의 강화,효율화를 위한 제도개선같은 것보다 신뢰회복이다.

우리 경제의 현안과제를 모두 일거에 해결하겠다는 허황된 약속대신
실현가능한걸 약속하고 약속한것은 눈에 띄고 피부로 느낄수있게
실행하는게 중요하다. 무엇보다 정부는 하반기에 긴축적인
총수요관리하에서도 중소기업과 수출및 제조업자금난의 실질적인 완화와
금리의 하향안정유도에 가시적인 성과를 추구해야한다.

대통령선거는 물가를 포함해서 여러가지 불안요소가 되고있다. 안정이 그
어느때보다 절실하게 요망되는 때이다. 그런데 그것은 정책에대한 신뢰와
이를 바탕으로한 장래에대한 기대,그리고 의욕이 있을때 비로소 가능하다.

정보사부지매각사기사건은 여러가지면에서 놀라움과 충격을 안겨주었다.

전문적조직사기단에 군의 엘리트장교와 중견은행원이 가담했고 사기물건이
군관할토지이며 공신력을 자랑하는 국내유수의 생보회사가 이 사기극에
걸려들어 나타난 금액만해도 660억원이라는 거액을 사취당했다는 사실만
가지고도 이 사건이 함축하는 의미는 단순한 사기사건의 차원을
넘는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충격적인것은 이사건에 연루된 각금융기관이
하나같이 사기단의 검은돈 거래의 합법적회로로 이용됐다는 사실이다.

국민은행의 경우 수백억원의 가짜예금통장과 가짜예금잔고증명의 발행뿐
아니라 몇백억원의 예금인출을 지점장도 모르게 일개 대리가 할수 있었다는
사실이라든지 제일생명 발행거액어음을 할인해준 상호신용금고 4사가
동일인 여신한도를 지키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런것이다. 그리고
제1생명은 대규모부동산매입과 거액의 융통어음발행에 관한 당국에의
보고및 승인절차를 어겼다. 특히 사기단이 국민은행의 각지점에 설정한
8개계좌를 이용,빈번하게 돈을 교차출입금 시켰다는 것은 지하경제적인
거래로 획득한 자금을 은행이라는 지상경제의 회로에서 합법적인
정상자금으로 운용할수 있게 한것이다. 이러한 금융기관의 엉성한
자금관리와 취급규정위반은 부동산사기같은 범죄사건이나 그밖에
금융사고가 일어나기 쉬운 발판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금융기관들의
맹성과 당국의 효과적인 감독이 촉구된다. 그러나 선의의 예금과 정상적인
기업자금을 금융기관 밖으로 퇴장시키는 따위의 자금이동 추적조사는
삼가해야된다. 이번 사기사건은 "예금비밀보장"을 지키면서 "돈의 세탁"을
막는 방법을 빨리 개발해내야 할 필요성을 통감시키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