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에는 어떤 업무현대화 시설이 설치되어 있는지 알지 못하지만,예전
우편국에는 반드시 비둘기집처럼 구멍 많은 우편물 분리대가 필수적이었다.
사회현상이든 자연현상이든간에 우리가 그것을 관찰 분석 이해하는데에도
알게 모르게 이같은 비둘기구멍의 도움이 필요하다. 개념이라든가 그
개념의 외연인 개체들의 명칭등은 바로 이러한 비둘기구명을 달리 부르는
이름에 불과하다.
고대사회의 철학자들은 이를테면 만물박사였다. 이들은 모든 현상과
문제들을 자기네 관심영역내에 두었으며 자기 관심사항이 아니라고
물리치는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일반생활인들은
농업이든 어업이든 여러분야에 두루 조금씩 관여하는 방식의 경제생활을
영위하였을 것이다. 말하자면 예전 사람들의 비둘기구멍은 그 수가 비교적
소수였으며,그 한 구멍은 여러가지 내용물을 포괄적으로 담을 만큼 넉넉한
크기였다. 그리고 그 구멍에 눈을 대면 나무뿐만 아니라 적어도 숲의
일부가 보였을 것이다.
전문화의 이익을 추구하면서 형성 발전되어온 현대사회에서는 경제활동도
다양해지고 학문영역도 세분화되었다. 이러한 전문화의 이점은 여기서
일일이 열거할 필요도 없을만큼 많다. 전문화는 일찍이 애덤 스미스가
지적한 바처럼 경제성장원동력이었다. 그러나 득이 있는 뒷면에 흔히 실이
있듯이,비둘기구멍은 그수가 더욱 많아지고 바늘구멍만큼이나 그 크기가
좁아졌다. 그래서 그 구멍으로 보면 숲전체는 커녕 한그루의
나무,심어지는 나뭇가지 하나만 보이는수도 있을 정도로 전문화된 분야도
없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파생된 부작용의 하나는 전체가 아닌
부분의 이해관계만을 중요시하는 사고방식의 확산이다.
경제정책과 관련하여 이같은 부작용의 사례를 찾아본다면 우선
이익집단들의 로비활동이다. 노동자들은 노조를 통하여,대기업들은
경제단체를 통하여 각각의 이해관계를 관철하고자 하고 오랫동안 조용했던
농어민들도 요즘은 때때로 집단행동을 통하여 목소리를 높이고있다.
여성단체들을 통하여 소비자들의 목소리도 간간이 들려온다. 최근에는
쓰레기매립장소를 둘러싼 지역주민들의 반대시위로 도시 골목마다 오물이
산적되고 공단지역이 산업쓰레기속에 침몰하고있다.
게다가 근년에 시작된 지방자치제는 이러한 지역이기주의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부분만 보이고 전체가 보이지 않는 좁은
구멍의 안경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집단별 이기주의들이 객관적
조정자에 의하여 조화될 수만 있다면 경제사회의 균형있는 발전에
도움이될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현존하는 어느 나라의 정부도 그러한
객관적 조정자로서 완벽하지 못하다.
정부부문의 현실사정을 보면 부처간의 주요 관심사가 다를수 밖에 없고
때로는 서로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되기도 한다. 더구나 같은
부처내에 있어서도 국이 다르고 과가 다르면 현상을 인식하는 시각에 큰
차이가 나타나는 것이 상례이다. 따라서 현실은 일반국민이 정부를 하나로
뭉쳐있는 조직으로 생각하는 관행과 상당한 거리가 있다. 이것이
현실이라면 적어도 중요한 이슈에 관해서는 정부가 하나의 목소리로
국민에게 말할수 있도록 조정할수 있는 장치가 마련됨이 바람직하고 요직에
앉은 분들의 비전과 리더십이 요망된다.
지난 5월27일 투신사 지원조치를 예로 든다면 크게 보아 중앙은행도
정부의 일부라고 볼때 정부부처간의 의견차이때문에 조치가 지연되었다고
하며,그것도 기관간의 위상문제가 걸림돌이었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
우리나라 금융산업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편협한 칸막이식 사고방식이
지배하고 있어 전체의 흐름을 그릇보는 우가 때때로 저질러지곤 한다. 그
대표적 예가 통화금융기관과 비통화금융기관,풀어 말해서 은행권과
비은행권 금융기관을 칼로 두부 자르듯이 구분해보는 시각이다. 현실의
시중자금은 이러한 인위적 구분과 관계없이 두 금융권 사이를 넘나들며
흐르고 있다. 따라서 어느 한 기관의 문제는 곧 전체금융권의 문제로 비화
확산될수 있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광주의 한남투신 목포지점에서 일어났던 대량
예탁금인출사태는 투신업계뿐만 아니라 전체금융권에 대하여 고도로 불길한
결과를 함축하는 조짐이었다. 자칫하다가 시기를 놓칠뻔 했던
타이밍이었다.
아무리 스페셜리스트가 우대받는 현대이지만 이들의 좁은 시야를 보완하는
새로운 슈퍼 제너럴리스트의 기능도 존중되어야 한다. 비둘기구멍에
책임회피가 숨을 자리를 없애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