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반도체업계가 진퇴양난에 빠져있다.
16메가D램생산경쟁에 뛰어드느냐 포기하느냐는 중대 사안을 놓고 삼성전자
현대전자 김성일렉트론등 반도체3사가 고심을 거듭하고있다.
16메가D램의 양산체제를 갖추기 위해서는 상업차관 도입이 불가피한
실정이며 지난주 경제기획원측이 또다시 "불가"입장을 표명했기 때문이다.
국내업체들의 16메가D램 생산에 대한 집착은 대단하며 반도체산업의
속성을 알면 이해가 간다.
반도체분야는 한마디로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첨단산업이다. 제때 생산만
하면 1년내로 설비투자비를 건질수있다.
반면 제품의 라이프사이클이 의류패션만큼이나 짧아 올해부터 95년까지
4메가 시대라곤 하나 95년부터 성수기에 접어드는 16메가시대에
대비,지금부터 서둘러야 국제경쟁력을 갖게되는 부담도있다.
또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생산설비비용이 많이 드는것도 흠이다. 즉
256K를 월2만개 생산하는 라인을 갖추는데 2억달러가 든다면 4메가는
6억달러,16메가는 10억달러나 소요된다고한다.
국내업체로서는 지난83년 뒤늦게 반도체산업에 뛰어들어 10년도 안되는
짧은 기간에 세계최고수준까지 올라섰다는 사실때문에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중도하차의 비극은 피하고싶은 분위기다.
반도체3사가 국제시장에서 살아남기위해 올한햇동안 필요한 자금규모는
1조7천억원. 사내유보금등 자구노력으로 일부를 충당하나 외화대출이든
상업차관이든 9억달러(7천억원)의 정부지원을 얻어내야 한다.
이같은 사정은 반도체3사중 단연 선두주자인 삼성전자의 경우만 봐도
손쉽게 알수있다.
이회사는 현재 성수기를 맞고있는 4메가D램 생산수준이 선진국과 대등한
위치에 올라있어 16메가D램 투자에만 전력해도 괜찮은 입장이다.
삼성전자가 올해 반도체분야에만 필요한 자금은 1조원정도. 이를위해
오는 4월께 1억2천만달러규모의 해외CB(전환사채)를 발행,이중 절반정도를
반도체분야에 투입할 계획이다.
또 국내 민간기업으로는 처음으로 2억달러상당의 양키본드발행을
추진중이며 미국 신용평가기관으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있어 빠르면
6월말께는 2억달러정도를 손에 쥘수있게 된다.
이밖에 사내유보금등 국내에서 4천억원정도를 끌어들인다는 계획도 세우고
있으나 여전히 4천억원이 부족하다는 결론이다.
결국 정부가 외화대출이나 상업차관도입의 길을 터줘야하나 외화대출의
경우 올 정부여유분이 10억달러에도 못미치고 있어 삼성전자 1개기업에
돌아올 몫은 미미할수 밖에 없다.
해답은 상업차관을 도입하거나 일본등에 뒤지더라도 계획규모를 줄이는
수밖에 없는 처지다.
삼성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현대나 금성은 16메가분야에 동시에 뛰어들어 지금까지의 열세를 단숨에
만회한다는 전략을 세웠으나 비상장기업인 관계로 해외증권발행조차
할수없다. 기업내용상 양키본드발행도 사실상 어려운것으로 알려져있다.
양사는 올해 각각 3천5백억원 상당의 설비투자를 계획하고 있으나 정부의
지원없이는 16메가진입은 커녕 4메가분야마저 흔들릴 궁지에 몰려있다.
그러나 이를 둘러싼 정부부처간 의견대립은 만만치않다.
상공부측은 도와주려고 하나 정작 돈줄을 쥐고있는 경제기획원과 재무부는
상업차관허용에 불가입장을 꺾지않고 있다.
상공부측은 업계의 기대에 호응,지난해부터 수차에 걸쳐 상업차관허용
가능성을 시사했고 지난9일에는 "반도체,92년을 도약의 해로"란 자료를
통해 기업측입장을 강력히 대변하기도했다.
전경련도 최근 회장단회의를열고 국내설비투자의 위축을 막기위해서는
상업차관도입을 허용해야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경제기획원이나 재무부측은 무역수지가 악화되고 외채가 늘고있는
지금 상업차관 허용은 시기상조라는 입장만 되풀이하여 반도체3사를
애태우고 있다.
특히 지난11일 최각규경제기획원장관이 기자간담회를 통해 "불가"입장을
또다시 밝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반도체업계는 당황하는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물론 선거가 끝나면 정부가 물꼬를 터주리라는 막연한 기대도 여전히
버리지않고있다. 그대신 정부측의 요구에 순응하는등 눈치보기에
부산하다.
그러나 만일의 경우 정부가 상업차관 도입을 끝내 허용치 않거나
외화대출규모를 줄인다면 반도체업계는 계획을 전면 수정할수밖에 없는
처지다.
이와관련,업계일각에서는 반도체산업을 포기할수는 없지만 국내경제규모
등을 감안할때 3개사가 16메가분야에 동시에 뛰어드는것은 비합리적이란
지적이 일고있다.
그보다는 수입의 90%를 차지하는 장치분야를 강화하거나 ASIC(주문형
반도체)등 비메모리 생산을 확대하는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가 강하다.
반도체분야는 오는 96년께에 이르면 국내총수출규모의 10%를 넘어설
전망이다. 분명 국가차원의 전략산업이어서 미국이나 일본등도 같은
맥락에서 정부지원이 지속되고있다.
따라서 16메가D램의 양산체제구축을 지연시키는것은 국가경제로 볼때
큰손실임에 틀림없다. 이와함께 이번 기회에 업체간 생산영역조정을
고려해봄직할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