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흐름을 바로잡고 금리를 낮은 수준에서 안정시켜라"
이용만재무부장관이 하루가 멀다하고 금융기관장회의를 소집한 자리에서
강조하는 말이다. 여느때같으면 한두번 지시한뒤 조용히 뒷마무리를
해오던 재무부가 자금흐름개선과 금리인하문제에 관해서만은 유독 표시나게
관련기관들을 지속적으로 다그치고 있다. 이장관은 지난 7일
추경석국세청장과 김건한은총재를 재무부회의실로 불러 "자금흐름개선에
힘써줄것"을 촉구한뒤 곧바로 은행장 단자.종금사사장
증권.보험사사장단회의를 잇따라 소집,특명을 내리듯 똑같은 내용을
강도높게 지시했다.
재무부가 지나치게 법석을 떨고있지않으냐는 소리를 들어가면서까지 이
문제에 몰두하는 데는 나름대로의 절박한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물가를 안정시키면서 제조업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는 올해
경제운용계획의 두가지 목표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다. 물가를 잡자면 돈을
빠듯하게 공급할수밖에없고 그러다보면 제조업을 되살리기 어렵기 때문에
두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선거로인해 상황은
더욱 좋지 않다. 그렇다고 이대로 주저앉을 수도 없는 노릇. 때문에
차선의 대안으로 전반적인 돈줄을 죄되 풀린 돈이 반드시 생산적인
부문으로 빨려들어가도록 돈의 흐름을 철저히 관리해서 바로잡는 문제를
부각시킨 것이다.
재무부가 몇차례 회의를 계속하면서 자금흐름개선을 위한 수단으로 제시한
내용들을 보면 금융협의회구성 계열기업군의 모든 여신을 주거래은행에서
통합관리 제조업대출확대 꺾기등 불건전한 금융관행척결 사치성소비업종에
대한 세정상의 규제강화등이다.
우선 금융협의회는 재무부장관이 위원장이 되고 각 금융기관대표자들을
참여시켜 구성한다는게 재무부 생각이다. 이 협의회에서는 금융자금이
용도외로 사용되는 사례를 예방하고 금리가 낮은 수준에서 안정되도록 강한
행정지도를 펴게된다.
계열기업군여신에 대한 통합관리는 계열기업이 생산적인 부문에 돈을
제대로 쓰고있는지를 주거래은행에서 한눈에 파악하겠다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지금까진 은행여신만을 관리해왔으나 앞으로는 단자 보험
증권사등 제2금융권의 여신도 주거래은행에서 일괄 통보받아 엉뚱한 곳으로
자금을 빼돌리거나 한 업종에 경쟁적으로 투자하는 것을 막겠다는게 재무부
복안이다.
제조업대출확대는 은행의 제조업대출지도비율을 높이고 제2금융권에
대해서도 지금까지 없었던 제조업지도 비율을 설정해서 지키도록
간섭한다는 내용이다.
사치성소비업종에 대한 세정상의 규제강화는 이들 업종이 번창하는것을
막으면 결국 시중자금이 제조업위주로 흐를 것이라는 전제아래 국세청의
힘을 총동원한다는 구상이다.
재무부는 이같은 수단들이 실효를 거둘수있도록 국세청및 각
금융감독기관과 합동으로 점검반을 편성,수시로 이행상황을 검사 감독토록
할 계획이다. 그냥 강조하는 선에서 흐리멍텅하게 끝내지않고 반드시
성과가 나타나도록 감시의 눈길을 끝까지 구석구석으로 보내겠다는
생각이다.
이런 방안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구체적인 실천계획으로 가시화될 것이다.
자금흐름개선은 돈에 꼬리표가 없기때문에 당장 손에 잡히는 성과가
없더라도 금리인하부문에서 조금씩 눈에 띄는 변화가 시작되고있다.
예컨대 단자사의 중개어음금리를 종전보다 1%포인트낮춰 18%대로 운용토록
한것을 들수있다. 아직은 미세한 변화이긴 하나 몇차례 회의를 하면서
독촉한 효과가 점차 나타날것으로 재무부는 기대하고 있다.
특히 이장관의 저돌적인 밀어붙이기가 어느때 보다도 단호하다는 점이
주목을 끌고있다.
정책방향에 호응하지않는 금융기관에 대해서는 기관장문책이라는
초강경조치도 불사하겠다고 말할 만큼 자금흐름개선에 대한 이장관의
단호함은 예사롭지 않다는게 주변사람들의 얘기다.
이장관이 자금흐름을 바로잡기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이것을 거스르는
금융기관을 응징하겠다고 벼르고있는데는 노태우대통령의 독촉도 작용한
것같다. 노대통령은 "남은 임기중 경제문제에 전념하겠다"고 밝혔듯이
경제관련사안을 직접 챙길 예정인데 재무부에는 자금흐름개선과 금리의
하향안정을 주문했다는 것이다. 특히 노대통령이 가까운 기업인으로부터
고금리와 불건전한 금융관행의 병폐를 전해듣고 이장관에게 직을 걸고라도
고치라고 독려한 것으로 알려져 이장관이 연일 회의를 소집하면서 뛸수밖에
없게 된것이다.
그러나 자금흐름개선과 금리의 하향안정을 위한 재무부의 노력이 실효를
거둘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수익성있는 곳으로만 쫓아가게 마련인 돈의 속성을 감안할때 서비스업으로
자금이 몰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수도 있기때문에 제조업위주로 돈줄을
돌리려는 몸부림은 한계에 부닥칠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우려도 많은 게
사실이다. 자칫 욕심이 지나쳐 과도한 행정규제를 동원함으로써
금융자율화는 사장되고 부작용만 낳을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다.
금리안정문제도 지금 당장은 연말에 풀린 재정자금이 넘쳐 흘러들어오고
기업의 수요도 적어 잘될것같은 분위기이지만 빠듯한 돈관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언제 또다시 금리가 뛰어오를지 알수없는 노릇이다.
때문에 예상되는 부작용에 철저히 대비하면서 경제의 원칙을 어기지않는
대책들을 꾸준히 실천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금융기관들을 다그쳐
작품을 만들어보겠다는 의욕이 도를 넘어 무리수를 낳는 꼴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경계의 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한다는 것이다.
<고광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