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의 본산"전경련이 16일 창립30주년을 맞는다.
경제가 피폐했던 지난61년 고이병철삼성그룹회장등 13명의 경제인이
출범시켰던 전경련은 이제 대기업들의 이익대변기관이자 민간경제계의
중추로서 뿌리를 내렸다. 4백61개의 기업및 단체를 회원으로 거느리는
거대조직이 됐고 이들의 연간매출액규모는 약1백50조원(89년기준)에
이른다.
전경련은 그동안 전반적인 경제문제와 관련,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왔고
많은 성과도 올렸다.
경제재건에 필요한 재원조달을 위해 민간외자도입교섭단을 미주및 구주에
파견(61년),민간경제협력의 첫장을 열었다.
울산공업단지(62년)수출산업공단(63년)종합무역상사(68년)설립등의
아이디어를 정부에 건의했다.
특허청설립건의(73년)의료보험연합회창립(77년)정보산업협회창립(83년)
중소기업창업지원을 위한 한국창업투자설립(86년)등도 전경련의 작품이다.
최근에는 분배정의문제와 관련,국민적 관심사가 되었던 금융실명제를
연기시키는데 큰역할을 했고 정부의 무리한 사회간접자본투자계획에 대해
맹공을 펼치기도 했다.
캐나다 프랑스등 21개국과 경제협력위원회를 설치,국제간 교역증진및
경제외교에도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재계총리"격인 전경련회장자리를 맡은 인사는 모두 7명뿐이다. 30년동안
20대회장이 있었으나 연임을한 사례가 많았던 때문이다.
초대회장을 맡았던 고이병철삼성그룹회장은 생애유일한 대외직함을 갖고
사무직 공채제도를 도입하는등 조직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얻었다.
2-3대회장은 60년대 시멘트.유화산업의 선구자였던
고이정림대한유화회장이 맡았다. 이회장은 경제재건과정에서 소외됐던
비회원들을 적극가입시켜 재계의 양분을 막고 전경련의 위상을 높였다.
김용완경방회장은 4-5대와 9-12대등 6대에 걸쳐 10년이란
최장수재임기록을 갖고있다. 김회장은 여론을모아 합의를 도출해내는
스타일로 정부와 재계의 중재자역할을 충실히 했다는 평을 듣고 있는데
원칙에 충실하느라 자신의 기업을 키우지 못했다는 지적도있다.
6-8대회장을 지낸 고홍재선쌍용양회회장은 첫비오너재계총수였으며
금융부문에 밝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13-17대회장을 맡았던 정주영현대그룹명예회장과 18대회장을 지낸
구자경럭키금성그룹회장은 소신껏 밀어붙이는 스타일로 전경련의 자율성을
높이는데 기여하기도 했다.
총리출신인 현유창순회장은 19-20대를 연임하고 있다. 부회장인
최창락씨역시 장관을 지냈기때문에 관료출신으로 라인이 이뤄져있는
셈이다. 이들은 관출신이란 점때문에 비업무용 부동산매각이나
업종전문화등 재계이익과 밀접한 사안에 대해 업계의 입장을 제대로 대변치
못했다는 평을 여러차례 듣기도 했다.
창립30주년을 맞은 전경련이 앞으로 풀어가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는
재계에 대한 국민의 신뢰감을 구축하는 일이다.
전경련이 사회정의와 부합되는 것으로 인식되는 여신관리제도나
금융실명제등에 누누이 반대입장을 표시해와 재계를 보는 국민의 눈초리가
따가운데다 정치자금기부등으로 정경유착의혹마저 사고 있다.
더구나 정부에서도 경제력집중완화정책을 적극 추진,재계이익대변기관인
전경련을 궁지로 몰아넣고있다.
전경련은 재계에 대한 이같은 사회적비판을 의식,최근 전국14개 농공고에
30억원의 실습기자재를 지원키로 하는등 모두 1백억원규모의
사회복지사업을 추진,이미지개선에 온힘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일반국민들이 이같은 사업추진에 얼마나 점수를 줄지는 미지수다.
재계에 대한 사회적시각을 바꾸기위해서는 공익사업의 지속적 추진과
재계를 옹호하더라도 국민을 이해시킬수 있는 설득논리의 개발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많다.
본격적인 개방화및 탈이념시대의 도래에 따른 국제경제질서 재편추세에
대한 대응전략을 수립,경제계를 안정시켜 나가는 일도 발등의 불이다.
조직운영면에서는 대기업그룹들의 독주를 억제하고 중견업체들의 견해를
반영할수 있는 길을 넓혀 조직을 활성화시켜나가야 할것으로 지적된다.
성숙기에 접어든 전경련이 기업이익과 국민신뢰회복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조화시켜나갈지가 주목된다.